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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주영화제 개막작 감독 민병국
2004-04-24

제5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무명 신인감독의 데뷔작을 개막작으로 선택하는 파격을 시도했다. 그 주인공은 <가능한 변화들>의 민병국(42) 감독. 대기업 종합상사를 다니다가 그만둔 뒤 1996년부터 <가능한 변화들>의 시나리오를 구상하다가 98년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가능한 변화들>이 200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부문에 당선돼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해 2003년 9월 촬영을 마치고 지난 3월 프린트를 완성했다.

<가능한 변화들>은 30대 중반 지식인의 불륜을 통해 사랑과 욕망, 가족과 직장,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담담하게 파헤친 영화로 일상을 응시하는 냉철한 시선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이 번득인다는 평가를 얻었다.

23일 전주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과 따로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다.

개막작으로 상영되는 소감이 어떤가.

▲3월 말 프린트가 완성돼 전주영화제에 출품했는데 개막작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제작과정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해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제목의 뜻을 설명해달라.

▲내가 종교인은 아니지만 이 세상이 무언가 알지 못하는 것에 의해 짜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큰 원리에 비하면 사소한 오차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오차를 넘어설 수는 없을까. 그 생각에서 이 영화가 출발했다.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어서 그런지 홍 감독의 영화와 비교하며 보게 된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그를 닮겠다거나 아니면 일부러 다르게 만들겠다거나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았다. 영화는 각자 취향대로 감상하는 것이지만 주관적 느낌을 갖고 봐줬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아쟁 소리를 듣고 사람이 우는 소리와 닮았다거나 으시시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국악기의 첼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주인공과 자신이 얼마나 닮았다고 생각하는가.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마음 속에 품은 욕망을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런 사람도 있고 누구나 가끔 그러기도 한다. 영화 속 종규처럼 스튜어디스에게 추근대거나 버스 옆 자리에 앉은 여자의 허벅지를 만지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 나는 온라인 채팅을 통해 여자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연출 의도가 얼마나 표현됐다고 평가하는가.

▲대체로 생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감독이 모든 부분을 다 책임지기는 어렵다. 특히 배우의 몫은 아무리 감독이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혼란을 겪는 배우도 있었고 다른 일과 병행하느라 촬영에 전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촬영도 제한된 시간 안에 끝내야만 한다. 그게 아쉽고 핑계라면 핑계다.

큰 얼개만 잡아놓고 현장에서 살을 붙이는 스타일인가, 아니면 완벽한 시나리오와 콘티에 의해 촬영을 하는가.

▲50일 24회에 촬영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완벽한 사전준비가 필요했다. 대부분 장면이 테이크 네 번을 넘어간 적이 없다.

배우에 맞춰 시나리오를 고쳤는지, 시나리오에 맞게 캐스팅했는지 배우들이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썩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겉으로 그렇게 보이지도 않고 본인이나 주변의 가까운 사람도 모르는 면모를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옥지영씨의 경우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는 우울하고 속깊은 성격으로 나왔는데 실제로는 철딱서니 없고 재미있는 구석이 있을 것 같아 그런 배역을 맡겼다.

웃음이 터져나오는 장면이 있으면서도 죽음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죽음의 코드를 배치한 까닭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고 거리가 멀지도 않다. 인류는 가능한 변화들을 끊임없이 동경하고 시도했지만 구체적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맨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영화 전편을 관통하는 모티브는 성욕과 불륜이다.

▲살인사건의 90%가 치정 때문이며 이중 90%가 남자가 여자나 여자의 정부를 죽인 것이라고 한다. 규장각에 보관된 조선시대 기록도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어떤 작가는 평생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성욕이었다고 한다.

노출 수위가 높은 정사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하다.

▲정사 신은 정말 생각을 오래 해서 잘 찍고 싶었다. 흔히 피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하다보니 적나라하게 됐고 이상하게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다른 해외 영화제를 노크한 뒤 하반기쯤 개봉할 예정이다. 외부의 투자를 받지 못해 전주영화제 이상으로 관객과 만나는 시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는데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배경을 무대로 삼았다.

당신에게 영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뒤늦게 출발했지만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충동적이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하는 게 다른 일보다 재미있다. 평소 남들보다 재미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책임감 느끼며 살려 한다. 아직까지는 아니지만 영화로 입에 풀칠하고 산다면 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