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감독 이만희 출연 최무룡
EBS 6월6일(수) 오후 2시
1960년대 초반 이만희 감독은 전쟁영화를 곧잘 만들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와 등 6·25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이만희 감독에겐 일종의 행운작이다. 신인감독에 불과하던 이만희 감독은 20만명 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영화의 성공 덕분에 스타감독 자리에 올라앉았다. 뿐만 아니라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국내에 전쟁영화 붐을 조성했다.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1964) 같은 영화가 후속작으로 등장했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어나는 남자들의 진한 연대의식이 한국영화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의 여느 전쟁영화와 비교할 때,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분명히 ‘걸작’으로 보기에 손색없다. 국군 해병대의 참혹한 전투를 담은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다루지만 반공 이데올로기나 편협한 민족주의에 기대는 오류를 현명하게도 비켜간다. 대신, 처참하게 죽어가는 병사들 모습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면서 “인간에겐 전쟁이 꼭 필요한가?”라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당시의 한국영화 중에서 반전 메시지를 이처럼 명료하게 전달하는
영화는 극히 드물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해병대의 강대식 분대는 중국군과 전투를 벌인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을 거듭하다가 중국군과 마주친 것이다. 분대
내부에선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정원주 병사는 인민위원회 재판으로 가족을 잃었는데 안형민은 자신의 형이 그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탓에
자책감을 느끼고 있다. 둘은 부대에서 처음 만나자마자 주먹다짐을 벌이고, 안형민은 끝내 형의 잘못을 용서하기 힘들다. 영화는 중반까지 해병대
병사들의 드라마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한 병사는 우연하게 자신의 여동생을 전쟁터에서 만나고, 외모가 여리게 생긴 누군가는 여자 같다고 놀림받는다.
영어를 못하는 한 병사는 미군에게 전혀 엉뚱한 ‘콩글리시’를 써가며 의사소통을 한다. 그런데 차츰 영화에 리듬이 붙기 시작한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중국군과의 격전이 몰아친 뒤, 병사들은 전열을 가다듬으며 휴지기를 가진다. 그리고 재차 폭풍 같은 전투가 시작된다. 병사 등 뒤로 폭탄이 터지고,
칼을 든 군인들이 진흙탕에서 뒤엉키는 등 장대한 스펙터클이 전개되는 것이다. 영화는 역동적인 미장센으로 중국군의 진격과 점차 퇴각하는 국군의
움직임을 담아낸다. 하나둘씩 군인들이 죽어가는 동안 분대장은 중얼거린다. “주검 앞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생기냐고? 단지 아직 죽지 않으니
살아 있을 뿐이다” 장르적인 쾌감이 슬그머니 물러나면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전쟁에 관한 허탈감과 비극적 서사를 전면에 배치한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엔 뛰어난 리듬감 이상의 무엇이 있다. 이만희 감독은 아역배우를 해병대 병사들과 동행하게 함으로서 과격하고 때론 단순한
병사들 세계를 동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전투의 와중에 생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을 아이의 때묻지 않은 눈으로 관망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병사들은 참호에 웅크린 채 적과 대결한다. 더이상 물러설 곳도, 나갈 곳도 없이 조금씩 삶으로부터 유리되는 이들의 모습은 이만희 감독이 이후
만든 <흑맥>이나 <삼포가는 길>(1975)의 길 위에서 정체된 자들, 혹은 어느 평자의 지적처럼 격리된 ‘심황’(心況)의 세계를 앞서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김의찬|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