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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소년을 둘러싼 사무라이들의 암투와 대결, <고하토>

혁명과 정치영화의 노장, 동성애 시대극으로 변심하다

“내가 농부라면 오시마 나기사는 사무라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이야기처럼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그의 영화는, 칼날 같았다. <청춘잔혹이야기>(1960)에서 <교사형>(1968), <의식>(1971), <감각의 제국>(1976)에 이르기까지 오시마 나기사는 영화를 통해 전후 일본사회를 통찰했다. 그의 영화는 모두를 적으로 대했으며 또한 그것을 예리하게 베고 또 베었다. 상대는 늘 바뀌었다. 부패한 일본사회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국가, 도덕적 관념, 이데올로기일 경우도 있었다. 영화형식을 극단적으로 실험함으로써 오시마 나기사는 일본영화를 현대화시킨 당사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거장의 행보는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고하토>는 10여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극영화를 만들지 않았던 오시마 나기사의 1999년작이다. 이 영화에 세계적인 관심과 비평의 시선이 쏠렸던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예상외로 <고하토>는 거의 ‘추문’이라고 할 만한 거대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하토>에서 우리는 시간을 이동한다. 막부 말기 ‘신선조’라는 사무라이 집단에서 새로운 무사를 뽑는 선발대회가 열린다. 총장과 부장의 입회 아래 신선조의 무사인 오키타 소지(다케다 신지)가 일일이 직접 상대하면서 선발을 하고 있다. 여기서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지닌 미소년 카노(마쓰다 류헤이)와 타시로(아사노 다다노부), 이렇게 두명이 선발된다. 신선조로 선발된 카노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으니 다름 아니라 지나치게 출중한 그의 미모. 아름다운 그의 미모에 신선조 총장도 은근히 관심을 보이고, 타시로는 적극적으로 그가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신선조 내부에서는 카노에 대한 소문들이 돌기 시작하고, 분위기는 점점 술렁거린다. 카노를 둘러싼 시기와 질투, 그리고 살인극이 이어지고 모든 것이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고하토>는 시바 료타로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고전적인 향취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절반의 만족과 배반을 동시에 준다. 이야기가 너무나 단순명료한 탓이다. 카노라는 미소년을 둘러싼 사무라이들의 암투와 대결, 그리고 칼싸움이 내용의 전부이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신선조의 무사들은 넋을 잃고 미소년에게 몰두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그와 잠자리를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동료 역시 눈앞에서 “널 좋아한다”라고 직접 고백하길 꺼리지 않는다. 사소한 에피소드들마저 모두 이 미소년과 사무라이들이 동침하게 되는 우스꽝스런 상황으로 흘러간다. 근엄한 사무라이들이 한 남자에게 홀리고, 그 때문에 칼을 휘두르는 엉뚱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 흥미로운 것은 카노 소자부로라는 캐릭터. 마쓰다 류헤이가 연기하는 이 배역은 극히 중성적인 매력을 뿜어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여성적인 눈매, 그리고 교태섞인 몸짓을 보이는 것이다. 한수 앞이 빤히 내다보이는 단조로운 이야기에 복선 역할을 하는 것은 영화 속 대사로 흘러나오는 <국화의 약속>이라는 이야기다. 남성들의 사랑이 담긴, 그리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뛰어넘은 사랑이라는 <국화의 약속>의 내용은 섹슈얼리티와 사랑의 매혹을 다시금 강조하면서 <고하토>라는 시대극에서 정치적 색채를 탈색시켜놓는다.

“더이상 현대의 일본에 대해선 관심없다.” 1970년대에 오시마 나기사는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고하토>를 만든 뒤 가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미소년에게 집착하는 사무라이들이 나오는 <고하토>는, 그래서 기이한 시대극이다. 나른하면서 몽환적인 이 동성애 시대극은 아무런 현대적 교훈이나 결말이 없다. 무사가 나무를 베는 짧은 장면을 통해 일본적 미의식을 과시할 따름이다. 형식도 무난하다. 그래서 더 나른한 영화처럼 느껴지는 구석도 있다. 도모토 마사키라는 비평가는 <고하토>에 대해 “관능에는 법칙이 없고 성애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글을 적은 적 있다. 거장의 영화에 대한 사려 깊은 예의 표시가 될 것이다. 에피소드 하나. <고하토>의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오시마 나기사는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외모에 꽤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 적 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손톱 손질을 받는 과정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에 혁명의 영화, 정치의 영화를 만들었던 그로선 의외의 모습이었던 기억이 있다. <고하토>는 나이든 사무라이가 만들어낸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영화다. 그런데 이 문장은 어쩐지 난센스 같지 않은가.

:: 출연 배우들의 면모

기타노 다케시에서 최양일까지

영화 <고하토>엔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가 출연한다. 감독 겸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왼쪽). 신선조 서열 2위의 히지카타 토시조를 연기한다. 히지카타 토시조는 카노라는 미소년을 둘러싼 비밀스런 사건을 유일하게 파악하는 인물이다. 그는 끝까지 카노에 대한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진 않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실은 카노에게 가장 심취하고 있는 인물이 히지카타 토시조임을 눈치챌 수 있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와 <소나티네> 등으로 이미 국제적인 감독이 된 기타노 다케시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적 있다.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1983)가 그것. 당시 코미디언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영화배우로서는 활동이 거의 없었던 기타노 다케시는 오시마 감독 덕분에 영화계에 입문할 수 있었던 것. <고하토> 출연은 그러므로, 답례의 의미가 크다.

카노 소자부로 역의 마쓰다 류헤이(가운데)는 최근 일본영화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배우다. 전설적 스타 마쓰다 유사쿠의 아들인 그는 오시마 나기사의 눈에 띄어 캐스팅되었다. 원작에서 묘사된 소자부로의 이미지, 즉 “아몬드색의 눈과 희고 창백한 피부, 그린 듯한 입술을 가진 매혹적인 미소년”이라는 이미지에 딱 맞아떨어지는 캐스팅이었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 오키다 소지 역의 다케다 신지는 <나이트 헤드>와 <도쿄 아이즈> 등에 출연했으며 TV드라마 등에서도 활약하는 배우다. 타시로 효조를 연기하는 아사노 다다노부는 국내에서도 팬층이 있는 연기자. 카노에게 적극적인 사랑을 표시하는 타시로 역을 무리없이 연기했다. 아사노 다다노부는 이와이 순지나 아오야마 신지 등 주로 일본의 젊은 감독들과 함께 작업을 많이 해왔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는 것이 배우로서의 소감이다. 신선조 총장 역의 최양일 감독(오른쪽)은 우리에게 <달은 어디에 떠있나> 등의 연출작으로 소개되었던 인물. 이번엔 배우로 출연했다. <감각의 제국> 스탭으로 오시마 나기사 영화에 참여했던 그는 ‘오시마’ 패밀리로 분류될 만큼 오시마 나기사와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진다. 이 밖에도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에서 음악은 물론이고 출연했던 류이치 사카모토 가 이번에도 영화음악을 작업했다. <고하토>는 이렇듯 기타노 다케시에서 최양일, 류이치 사카모토까지 오시마 나기사 슬하에서 경력을 키운 스탭들이 다시 모인 성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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