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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릴레이] 김소영 교수의 여성영화제 리뷰

그러니까 한국 영화사의 초창기, ‘조선’ 의 영화 문화가 형성되던 때. 그 남녀유별하던 시절, 영화관에는 여자들만을 위한 부인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모던 보이 경성을 거닐다>라는 책은 그 부인석의 사정을 이렇게 전한다. “1927년에서 28년 무렵쯤엔 노부인, 여염집 부녀, 기생, 여학생들로 부인석은 거의 만석이 되고, 그 중 ‘성에 갓 눈 뜬 녀학생’이 부인석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1997년 시작해 이제 6회를 맞고 있는 서울 여성 영화제는 그렇게 부인석으로 출발했던 모던 걸의 영화 문화를 동시대 여성주의 담론의 장으로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올해 영화제에 새로 만들어진 영 페미니스트 포럼은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는가를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동시대 여성주의 담론의 장…얼마나 먼 길을 달려왔는가

일제 강점기, 부인석의 여성 관객들 자체가 종종 모던 보이의 구경꺼리였다면, 서울 여성 영화제의 관객들은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를 비평하고 옹호하는 평론가들이다. 지난 3일 상영된 <소금-철도여성 노동자 이야기>(4월 8일 재상영)이 끝난 뒤 박정숙 감독과 나눈 대화에서 교복을 입은 두 명의 여고생들은 임신 가능한 철도여성 노동자 중 약 50%가 유산을 경험하는 여성 적대적 노동 환경에 분노했고, 또 다른 관객들은 다큐멘터리 제작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가 하는 사려 깊은 질문을 던졌다.

현재 본인 역시 임신 8개월인 박 감독은 관객들의 정감어린 격려 속에서 대화를 마쳤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로는 여성 빨치산 박순자씨의 삶을 다룬 김진열 감독의 <잊혀진 여전사>(4월8일 상영)가 있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과 함께 냉전의 상처를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다.

위의 작품들이 한국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들이라면 <오타르가 떠난 후>라는 영화는 구소련 붕괴 이후의 그루지아의 이주 노동 문제를, 3대에 걸친 여자들을 통해 제기한다. 프랑스 자본 유치를 유일한 탈출구로 삼고 있는 그루지아의 젊은 여성에게 과연 미래는 있는 것인가 이 영화는 현재 세계가 긴급하게 직면하고 있는 이주 노동의 문제를 그루지아와 파리를 오가며 다룸으로써, 이주 노동이 제기하는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서적 부분을 친밀한 시선으로 탐사하는 정교한 작품이 된다.

이런 동시대적인 뜨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들의 발굴 외에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아시아 특별전과 같은 재발견 작업이다. 올해는 일본 영화 회고전으로 와카오 아야코, 다카미네 히데코 등 여배우를 통해 일본 영화의 고전들을 읽어보길 권하고 있다. 이 두 명의 배우들이 출연한 <하나오카 세이슈의 아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애증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18세기 <본초강목>에 근거한 전통 의술과 서구의 외과수술을 결합하고자 했던 근대 의학의 선구자인 하나오카 세이슈를 등장시키고 있다.

가문의 모든 여성들 즉, 어머니와 아내, 두 명의 여동생들이 모두 그의 의술을 진보시키기 위한 마취제 실험의 대상이 되거나, 경제적 조력자로 동원된다. 특히 와카오 아야코가 분한 그의 아내는 효과적인 마취제 개발에 인간 모르모트로 자신을 희생하다가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는다. 이 영화를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에 대한 전사 혹은 알레고리로 읽자면 일본 여성들의 육체는 근대 의학의 실험 대상으로 반강제적으로 사용된 셈이다. 그래서 여성주의적으로 거슬러 읽게 되면, 이 영화를 이후 곧 제국주의와 결합하게 되는 일본 근대화의 폭력적 기원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도 있다.(서울여성영화제는 4월 9일까지 신촌의 아트레온과 녹색 극장에서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