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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1]
김도훈 2004-04-06

26살의 양동근. 이 무뚝뚝한 남자가 낯선 상대에 대한 의심을 떨쳐내고 비로소 받아들일 시간은 빨리 오지 않는다. 그 시간이 채 다가오기도 전에 그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뽑아내야 하는 건 고된 일이다. 그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특유의 표정과 느릿느릿한 몸짓과 특히나 그 이마 위 가느다란 신경세포들의 곡선을 이룬 움직임, 그것들을 지면에 생생하게 옮겨놓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짧은 답변들 속에 엇박자로 튀어나오는 양동근의 거침없는 생각들과 미묘한 차이로 흔들리는 목소리의 변화.

양동근과 친근해지는 것만큼이나 그를 정의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우물우물 읊조리는 랩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가수이기도 하고, 카메라 앞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에너지를 분사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비로소 그를 이야기하고 정의내리기 시작했던 것은 <네멋대로 해라> 이후 부터였을 것이다. 마니아를 양산하며 그 독특한 팬덤을 형성했던 <네멋대로 해라>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자면 가장 ‘쿨’한 드라마였다. 분명히 그 드라마는 이전의 고답적인 드라마들과 단절을 선언하는 새로운 작품이었다. 주인공들은 웃어야 할 때 울고 울어야 할 때 웃는다. 사람들의 관계 맺음과 그 관계에 대응하는 행동의 방식은 이전의 것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뚝배기 같은 얼굴과 느릿느릿하게 끓는 청국장 같은 말투의 양동근이 그 새로운 드라마의 본질에 딱 맞아떨어졌던 것도 당연하다. 이 남자는 예쁘지 않았으나 아름다웠고 거칠었으나 부드러웠으니까.

사람들은 그가 <네멋대로 해라>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종종 잊어버린다. 그는 팬덤의 꼭대기에서 새로운 매체와 세대의 남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양동근이 처음으로 성인의 얼굴을 가졌을 때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울 뚝배기>(오해가 있다면 그는 절대로 <전원일기>의 금동이 역할을 한 적이 없다)에서 주현을 그대로 흉내내던 깜찍한 꼬마는 결코 귀엽지 않은 용모의 소유자가 되어 나타났다. 누구 하나 그를 반기지도 않았고 그에게서 뭔가를 기대하는 이도 없었다. <> <화이트 발렌타인> <댄스댄스> <해변으로 가다> 같은 초기작에서의 양동근은 천천히 자신의 귀환을 알리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기회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그리고 양동근에게는 전혀 다른 두 가지의 기회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수취인불명>과 <뉴논스톱>이 바로 그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에서 그가 연기한 창국이라는 캐릭터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했다. 아역 출신 배우들이 으레 겪게 마련인 그 혼란스러운 성장기는 양동근에게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현재의 방황과 미래의 절망으로 가득 찬 캐릭터는 참으로 제격이었다. 김기덕 감독에 의해 거칠게 그려지는 현대사 속의 ‘창국’은 양동근의 탈을 쓰면서 조금은 내면으로 가라앉았다. 양동근에게는 십년이 넘는 아역배우 생활로 터득한 숨어 있는 내공이 있다. 그리고 그 내면의 조심스러운 가능성은 날카롭지만 거칠게 날이 선 김기덕의 섬뜩한 6번째 작품에 적절한 페이소스를 선사했다. 배우로서의 양동근을 발견한 우리에게 다음으로 찾아온 건 스타 양동근이었다. <뉴논스톱>에서의 구리구리 동근은 그의 외적인 특징들을 아낌없이 절묘하게 사용하며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우스꽝스럽게 캐리커처화되어 있는 실명의 캐릭터는 그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자신감을 회복해주었다.

<네멋대로 해라>의 성공은 앞의 두 작품들에서 분리되어 있던 두개의 각기 다른 양동근을 한곳에 모아서 제대로 버무려놓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빛나는 양동근의 귀환은 여기까지 왔다. <와일드카드>를 살짝 비트는 듯한 <마지막 늑대>의 최철민 형사는 지금 여러모로 시험대에 서 있다. ‘일하기 싫어’를 외치는 남자 속에 드러나는 양동근의 아우라는 잠시 질주를 멈춘다. 자신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가두어두기에 오히려 양동근의 매력은 살짝 가려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배우 양동근의 숙제는,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그 독특한 에너지로 한동안은 멈춤없이 달려가는 것이다. 그에게는 랩으로 거칠게 쏟아내는 격렬한 솔직함과 카메라 앞에서 만들어온 독특한 개성이 있다. 배우 양동근이 벽에 부딪힐 때 솔직하기 그지없는 래퍼 양동근의 에너지를 끌어낸다면, 그만의 나른한 페이소스는 더 큰 가능성의 화약고가 된다.

그러니까 26살의 이 남자, 참으로 흉포하고 참으로 재미있다. 양동근은 김치 냉장고에 넣고 천천히 삭힌 김치 같다. 그는 인공적인 연예계 시스템에서 어린아이로 살아남아서 어른의 얼굴로 돌아왔다. 오래오래 서서히 숙성해 언제든지 대중에게 맛있게 먹혀지는 방법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한 사람이다. 서늘한 음지에 숨어서 천천히 자신을 익혀가는 이 남자. 그렇게 숨어 있는 이 늑대 같은 남자의 말들에서 직설적인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 인터뷰의 목적은 그 느릿느릿한 행간의 의미들을 낚시질해내는 것이다. 늑대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조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늑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호랑이가 되어 그를 내려다보아서도, 순한 양처럼 그에게 꼬리를 쳐서도 안 된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필요하지 않다. 양동근의 말들은 미사여구를 덧붙일수록 생기를 잃어가는 펄떡펄떡 뛰는 싱싱한 횟감과도 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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