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외 카소비츠의 신작 <고티카>를 보고 있노라면 <스크림>에서 공포영화의 규칙들을 열거하며 농담 따먹기를 즐기던 주인공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오컬트 무비에서 사이코스릴러로, 그리고 동양적 한을 접목시키는 데 골몰한 듯한 최근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공식까지, 어떤 한 가지 특성이 유행의 첨단으로 등장하는 순간 곧바로 진부해져버렸던 ‘게임의 규칙’을 다시 한번 아우르는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물론 영화 만들기에 있어 짜깁기의 미학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으나, 문제는 ‘익숙함을 얼마만큼 새롭게 활용하고 역전시키느냐’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가 결정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고티카>는 관객과의 심리 게임을 조율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엉거주춤하고 있다. “당신이 진실을 말할수록 미친 게 아니라고 주장할수록 다른 이들에게는 정말로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분석하던 이에서 순식간에 분석당하는 이로 추락한 미란다 역을 맡은 할리 베리는 그 무기력한 분노와 광기에 빠져들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무난히 잘 소화했다. 그러나 감독의 시선은 할리 베리의 스타 파워에 집중한 나머지 그 이외의 사람들, 그러니까 정체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는 그들 때문에 미란다의 불안이 한층 생생하게 증폭될 수도 있었을 조연들(클로이를 비롯하여 미란다를 흠모하면서도 의심하는 동료 의사 피트, 미란다의 남편 더그, 병원 동료 필과 보안관 밥)이 보여주는 모호함은 단편적인 스케치로만 흘려보낸다. 결과적으로 <고티카>가 안겨주는 공포의 핵심이었어야 할 절박한 긴장감은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영화 속 비밀들은 지나치게 뜬금없이 출몰하는 듯한 인상만을 남긴다. “무서워요?” 클로이가 미란다에게 묻는다. “아뇨.” “무서워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고티카>는 이 자신만만한 발언에 미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