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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진정성에 감동이, <토끼 울타리>

<긴급명령> <본 콜렉터> 같은 영화를 만들던 필립 노이스는 2002년에 잠시 회귀를 감행했다. 고향인 호주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초기작 <백로드>처럼 휴머니즘 가득한 작은 규모의 영화 <토끼 울타리>와 <조용한 미국인>을 연이어 내놓았던 것. 그중 <토기 울타리>에선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을 더 찾을 수 있다. 호주에서 태어났으나 대부분 아시아에서 작업했던 크리스토퍼 도일, 근래 제3세계와 민속음악에 심취한 피터 가브리엘이 그들이다. 그래서일까? 혹시 그들이 소재주의에 빠진 백인들은 아닌지,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보면 <토끼 울타리>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드라마다. 호주의 백인 정부에 의해 가족을 떠나 수용소에 배치된 세 원주민 소녀가 2천km 떨어진 집을 찾아간다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가족의 결합’이란 주제의 보편성은 무시하기 힘들다(감독이 연출을 주저하다가 결국 맡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1930년대 실제 벌어졌던 일인데다가 원작을 주인공의 딸이 직접 썼단다. 하나 더, 니콜라스 뢰그의 <워크어바웃>에 나왔던 원주민 소년의 30년 뒤 모습을 보면서 두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황량한 이미지의 바랜 듯한 영상은 DVD 표현이 힘든 대상이었으나 만족스럽게 담겨 있으며, 사운드도 기대 이상이다. 다만 상영 환경의 차이 때문인지 외국 출시본과 다른 화면비율을 보여준다. 음성해설과 인터뷰 그리고 제작 영상 등의 부록은 내용 면에서 근래 본 것 중 가장 충실하고 정성스러운 것이었다.

이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