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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계의 디바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8명의 여인들>
홍성남(평론가) 2004-02-25

프랑스 영화계의 매력적인 디바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

오직 여성들만이 등장했던 조지 쿠커의 1939년작 <여인들>의 부제는 ‘남성들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원래 이 영화의 리메이크를 고려하기도 했었던 프랑수아 오종이 “나의 여성영화 프로젝트”로 만든 영화 의 부제를 붙인다면 그와 비슷하게 ‘한 남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성들의) 모든 것’쯤 될 것 같다.

영화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 각자에게 사위, 남편, 아버지, 오빠, 내밀한 연인, 고용인인 한 남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바로 그 남자가 성탄절 아침에 그만 칼에 찔린 채 죽어 있는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이제 범인을 찾아야만 하는데 영화 속 여성들 가운데 용의자 리스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은 이야기의 가장 중심되는 경로로 보아 이를테면 애거사 크리스티의 <쥐덫>을 참조한 미스터리영화임에 분명하지만 오종의 욕심은 추리극을 만드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는 뮤지컬적인 요소를 간간이 삽입하는가 하면 엉망진창의 가족코미디를 끌고들어오기도 한다. 단지 하나의 장르로 산뜻하게 정의될 수 없는 이 영화에는 그 밖에도 아주 긴 리스트를 요구하는 참조대상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미장센은 더글러스 서크를 떠올리게 하고, 영국적 배경 안에 담긴 연극적 분위기는 알랭 레네의 근작 <스모킹/노 스모킹>을 연상케 하기도 하며, 또 어떤 부분들은 자크 드미와 앨프리드 히치콕, <길다> 등등을 생각나게 한다. 여기에다가 오종은 짓궂게도 여배우들의 실제 경력까지도 이용한다. 이를테면 도도한 이미지의 이자벨 위페르가 그것으로부터 굴절된 모습으로 등장할 때, 예전에 프랑수아 트뤼포를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던 카트린 드뇌브와 화니 아르당이 반목하는 사이로 나올 때, 그걸 알고 있으면 웃음은 더 자주 나오게 된다.

은 오종의 이같은 키치적 감성말고도 세상을 도발하고 싶어하는 악동기질도 살아 있는 영화다. 이 영화가 주는 재미의 상당 부분은 여덟명의 여자들이 외면 너머의 숨겨진 모습들을 하나둘씩 드러내는 것에 있다. 알고 보니 그들이 모인 세계란, 오종의 다른 영화 <시트콤>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성애, 외도, 근친상간, 관계의 꼬임 등처럼 ‘비정상적인’ 요소들로 넘쳐나는 혼돈의 세계였다는 것이다. 그 혼돈의 세계에 다니엘 다리외로부터 드뇌브, 위페르 등에 이르는 프랑스 영화계의 찬란한 디바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거기엔 그래서라도 별다른 향취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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