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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다 붙어! <바람의 파이터> 촬영현장
이영진 2004-02-17

<바람의 파이터> 현지 로케이션 일본 메이지무라를 가다

나고야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아이치현 이누야마시의 메이지무라(明治村). 우리 식으로 말하면 민속촌에 해당한다. 100여년 전 학교, 병원, 전화국, 선술집, 교회, 역 등의 풍경이 줄지어 있는데 서구 문물을 본격적으로 들여오던 일본 개화기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이곳을 찾은 날은 건국기념일인 2월11일로 휴일이었지만 인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단, 제4고등학교의 무술도장이었다는 곳만은 예외였다. 전설적인 무도인 최배달의 생애을 다룬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22회차 촬영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50여명의 스탭들과 배우들로 채워진 뿌연 스모그 가득한 도장. 여기에 10여명의 취재진까지 가세하자 무성당(無聲堂)이라는 도장 현판은 더욱 무색해졌다.

이날 촬영은 니조 도장의10명과 차례차례 대결을 벌이는 최배달을 담았다. 극중 입산수도를 마치고 난 최배달이 일본 전국의 가라테 도장을 돌아다니며 고수들에게 대련을 청하는 장면이었는데 양윤호 감독은 좀처럼 ‘OK’ 사인을 내주지 않았다. 상대의 얼굴을 발로 내리찍는 액션을 쉼없이 몇 차례 반복한 탓에 최배달 역을 맡은 양동근도 넘어진 상대를 일으켜주고나서 곧바로 거친 숨을 뱉어낸다. “동근아 힘내라. 한번만 더 가자.” 이어지는 감독의 격려와 채근.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숨을 고르고 있던 누더기 차림의 최배달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메라 앞으로 다시 뛰쳐나간다. 양동근은 얼마 뒤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플래시를 터트리는 불청객들이 불편한지 적잖이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방학기의 원작만화 <바람의 파이터>와 <넘버.3>에서 송강호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 때문에 최배달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1922년 전라북도 김제 출생. 열여섯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감. 야마나시 소년항공 재학 중 1939년 공수도(가라테) 입문. 1947년 일본 공수도선수권대회 제패. 이후 산속에 들어가 1년 반 동안 수련을 한 뒤 전세계 온갖 무술 고수들과 대결을 벌여 승리를 거둠.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눕히고 맨주먹으로 암석을 격파하는 등의 전설 같은 괴력의 소유자. 이번 영화는 그의 삶의 궤적을 따르되 “대결을 앞두고 두려움 때문에 머리가 한 움큼씩 빠졌다”는 최배달의 인간적인 면모와 “귀화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싸움꾼이라 폄하됐지만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는 최배달의 민족애를 부각시킬 계획이다. <리베라 메>(2000) 이후 4년 만에 현장에 돌아온 양윤호 감독은 어릴 적부터 최배달의 팬이었다고. 현장 세팅 때 직접 자신이 벽돌을 같이 나르는 것도 그런 애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35% 촬영을 마친 <바람의 파이터>는 오는 한여름에 개봉할 예정.

일본 아이치현=글 이영진·사진제공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

△ 오늘은 김두한 vs 김일. 내일은 역도산 vs 시라소니. 유년 시절 양윤호 감독은 전설의 영웅들을 머릿속에 불러들여 이종(異種) 격투기를 시켰다고. (왼쪽 사진)

△ 양동근에 대한 감독의 신뢰는 기대 이상이다. 양윤호 감독은 “단지 감독과 배우 그 관계 이상”이라고 말한다. (오른쪽 사진)

△ 계속되는 리플레이에 같은 부위를 계속 가격당했던 조연배우를 위해 양동근은 매번 잊지 않고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표했다. (왼쪽 사진)

△ 기존에 일본에서 성행하던 가라테는 “가격 전에 동작을 멈추는 경기”였다. 이에 비해 최배달이 만든 극진(極盡) 가라테는 손에 의한 안면 공격 등을 제외하곤 자유로운 가격이 허용된다. (오른쪽 사진)

△ 한국과 일본의 차이? 양윤호 감독의 한 차례 고성에 일본쪽 제작부 여자 스탭은 서러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고. (왼쪽 사진)

△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생전의 최배달은 ‘실전만이 증명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오른쪽 사진)

감독, 배우, 일본 프로듀서와의 토막토크

최배달은 한민족의 황비홍

메이지무라의 고풍스런 호텔 전시물 안에서 이뤄진 기자회견에는 양윤호 감독, 양동근 외에 일본 배우들이 함께 자리했다. 최배달의 연인인 게이샤 요우코 역을 맡은 히라야마 아야는 <워터 보이즈> <행복한 가족계획> 등에 출연했던 배우. 신발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1시간 가까이 행사 시작이 늦춰져 참석한 이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다행히 아는 한국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안녕하세요. … 음… 겉저리”라고 답해 좌중으로부터 폭소를 끌어냈다. 일본 최고의 무도인으로 최배달과 라이벌 관계인 가토 역의 가토 마사야는 <크라잉 프리맨> <브러더> <극도공포대장 우두> 등에서 얼굴을 알렸다. “최배달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됐다고.” 이 밖에 종종 최배달을 위기에 빠뜨리는 친구 춘배 역의 정태우와 최배달의 제자이자 일본 현지 프로듀서인 마키 히사오가 동석했다.

<마지막 늑대> 촬영을 끝내고 곧바로 합류했다. 최배달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양동근) 감독님이 보여준 비디오 자료를 먼저 챙겨봤고. 짬날 때마다 스트레칭 위주로 운동했다. 부산 극진회관 지부에 가서 3박4일 가라테 동작을 익히기도 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니 현재로선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다.

양동근이라는 배우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양윤호) 감독과 배우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다. 양동근은 <>(1998) 할 때 만나서 작업한 적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편했다. 인간적인 모습의 최배달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고 도움을 많이 받는다.

최배달이라는 실제 인물을 연기하는 데 부담은 없나.

(양동근, 옆에 앉은 양윤호 감독에게 고개를 돌려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뭐,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셨… 죠? (웃음) 시나리오 읽을 때 실존 인물이다, 전설적인 영웅이다 하는 부담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어떻게 부각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최배달의 인간적인 모습이라면 어떤 것인가.

(마키 히사오) 소를 맨손으로 죽인 전설적인 영웅이지만 소심한 성격이었다. 언젠가 긴자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나보고 그러더라. ‘이런 데서 술먹다가 지진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웃음)

일본어도 따로 공부했나. 어떻게 공부했는지 궁금하다.

(양동근)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어떻게라는 게 따로 있나. (정태우) 내가 맡은 춘배라는 역할은 최배달보다 더 오래 일본에서 살았던 인물이라 더 능숙하게 해야 한다. 게다가 경상도 사투리도 구사해야 한다. 갑자기 2개의 외국어를 배워야 했는데. 경상도 사투리는 개그맨 김효진씨에게 배웠고, 일본어는 어학용 학습기를 사서 공부했다.

현지 로케이션이 쉽지 않을 텐데. 감독과 배우의 입장에서 힘든 점이 있다면.

(양동근) 먹는 거다. (촬영현장에서) 주로 도시락을 먹는데 아무래도 양념이 우리와 달라서 음식이 입에 잘 안 맞는다. 영양소가 부족한지 버짐까지 피더라. 그래도 일본 곳곳을 언제 둘러볼 기회가 있겠나. 로케이션 장소가 4곳인데 좋은 그림 담으려고 헌팅한 곳들이라 정서 함양에 좋다. 가는 곳마다 슬쩍슬쩍 온천욕을 즐길 기회도 있고.

(양윤호) 힘든 점보다는 좋은 일본 배우들과 작업할 수 있어 서 좋다. 연기도 그렇거니와 기본적으로 성실한 자세와 열의가 존경스럽다.

최배달이라는 인물의 무엇을 부각시키고 싶나. 또 액션 분량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연출할 계획인지.

(양윤호) 우리에게 일제시대만큼 불행한 때는 없었다. 그 시대에 국내에는 김두한이라는 인물이 있었지만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최배달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최배달은 황비홍 같은 인물이라고 여겨진다. 어려운 시대에 훌륭하게 살아남은 청년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 액션장면에선 거짓말 액션은 피하려고 한다. 그러는 게 재미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스포츠가 영화보다 재밌는 건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인데, 영화의 액션마저 거짓말이라고 느껴지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