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픽처스 한선규 대표는 배우 한석규의 형이자 매니저로만 알려져왔다. 그러나 그는 <초록물고기> <넘버.3> 〈8월의 크리스마스〉등을 알아본 안목의 소유자이기도 했고, 젊은 시절 감독을 꿈꾸던 영화청년이기도 했다. 힘픽처스의 문을 열고 3년이 지난 지금, 그의 역할은 한석규가 출연하는 영화 <소금인형>의 제작자다. <소금인형>은 사고로 아들을 잃은 상처가 있는 변호사가 아내의 납치사건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스릴러. 납치의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아내는 뒤늦게 남편이 들려주는 사고 경위와는 전혀 다른 기억을 떠올리고 그를 의심하게 된다. <소금인형>은 촬영이 20% 정도 진행된 상태. “아직 만든 영화도 없는데, 할말없는 사람을 왜 불러냈는지 모르겠다”던 한선규 대표는, 그러면서도 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기 위해 가끔 말을 멈추기도 하면서, 한선규 대표와 느리고도 긴 인터뷰를 가졌다.
회사 이름이 독특하다. 의미가 있는 이름인가.▶ 대학 다닐 때부터 알던 친구들이 이 건물에서 CF 제작사를 하고 있었다. 그 회사 이름이 힘픽처스였다. 친구들이 다른 사무실을 얻으면서 그대로 들어온 거다. 간판 새로 달 필요도 없고, 메모지나 서류봉투도 다 물려받아서 쓸 수 있으니까 좋았지. (웃음) 어떤 사람들은 ‘한 인터내셔널 무비’(HIM)냐고 물어보기도 하더라.
<소금인형>은 한달 정도 촬영을 중단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처음 생각했던 규모보다 적은 제작비로 시작했다. 그래서 활시위를 당기기 전에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화살 무게도 좀 가볍게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겠더라. 생쥐나 한 마리 잡자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화살 무게가 어느 정도 나가줘야 과녁을 뚫을 게 아닌가. 화살을 곧게 펴고 촉을 가는 시간이었다고 보면 될 거다. 이제 남은 건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힘을 실어줘서 활시위를 좀더 당기는 건데, 나는 CJ쪽에서 그러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회사를 차리고 3년 만에 만드는 영화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는 뜻일 텐데.▶ 프로젝트 두개를 진행하다가 엎어졌다. 하나는 〈11월의 비〉라고 알려졌던 거고, 다른 하나는 12·12 사태를 다룬 시나리오였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면서 두고두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소금인형>은 2, 3년 만에 처음 보는 재미있는 시나리오였다. 이순안 감독은 <카라> 시나리오를 썼던 사람인데, 그때 한석규를 섭외하려고 나를 만났다고 하더라. 한 시간 내내 떠들어도 내가 말 한마디 안 하더라면서. 난 정말 기억 안 나는데. (웃음) 요즘 한국영화는 아이들 영화만 판치고 있지 않나. 성인들이 나오는 영화, 성인들이 볼 만한 영화를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스릴러영화가 워낙 안 되기도 했고. 영화 보고나서도 아리송한 게 스릴러인 줄 아는데, <소금인형>은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쯤이면 전부 이해되는 영화다. 사실 좋은 시나리오는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다. <넘버.3>는 딱 30% 읽고 시나리오 덮었다. 이번에는 50%까지 읽으니까 감이 왔다.
한석규가 출연한다고 해도, 제작 상황이 그렇게 좋진 않은 것 같다.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어려운 건 없다. (웃음) 예전에 로맨틱코미디가 인기를 얻으면서 대규모 투자사 두 군데가 그런 영화만 만들었다. 그러다가 망했다. 지금도 비슷하다. 다들 풀빵영화만 찍어내려고 한다. 제작비 적게 드는 코미디영화들. 그런데 풀빵도 한철이지, 여름에 어떻게 풀빵을 먹겠는가. 가끔 햄버거도 먹어주고, 그래야 할 텐데. 그렇다고 내가 할리우드산 거대한 햄버거를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다. 영화제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투자사들이 비슷비슷한 영화만 기획할 게 아니라 다른 데도 눈을 돌렸으면 한다.
〈11월의 비〉도 한석규가 출연하려던 영화다. 제작하려던 영화마다 한석규를 염두에 두었던 건가.▶ 그렇진 않다. 서른 넘은 남자배우가 필요했고, 한석규가 잘 맞았던 것뿐이다. <소금인형>에서 한석규가 평소보다 개런티를 적게 받았는데, 형이 제작하는 영화라고 해서 그렇게 했겠는가. 싫다고 하면 그만인걸. 한석규는 좋은 배우다. 돈이나 이미지보다는 영화를 먼저 생각한다. 한석규는 <넘버.3>의 검사나 <은행나무 침대>의 황 장군을 제안받았었는데, 다른 배역을 골랐다. 그라고 폼나는 배역 하고 싶지 않았겠나. 영화 전체를 위해서 포기하고, 그 배역은 잘 어울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긴 거다. <쉬리>를 찍을 때도, 나는 남파공작원 박무영을 연기할 배우는 최민식밖에 없다고 생각했다.최민식과 송강호 매니지먼트도 함께했었다. 이유가 무엇이었나.▶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빛을 못 보고 있는게 분통터졌다. 그 무렵엔 잘생긴 배우들만 있었으니까. 송강호는 <초록물고기>를 찍으면서 알게 됐다. 송능한 감독에게 <초록물고기>에 진짜 생양아치 같은 배우가 한명 나오는데 한번 가서 보라고 했다. 내가 매니지먼트하는 배우 키우려는 사심이 있었으면 지금 송능한 감독 얼굴도 못 보겠지.
한선규 대표 자신도 워낙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한석규 매니저를 하기까지 꽤 멀리 길을 돌아왔는데.▶ 부모님 반대 물리치면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대학 3학년쯤 되니까 그림 한장이 너무 좁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영화에 미쳤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살고, 낮에 극장에 들어가 눈에서 진물이 나도록 영화를 봤다. 비디오가 없어서 영화를 외우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허리를 다치면서 연출부가 되기를 포기했다. 온갖 험한 일을 다 해야 하는데 그 허리로는 방법이 없었다. 평범하게 살자고 결심하고 직장 다니다가, 비디오 프로덕션도 들어가고, 컴퓨터그래픽 강사도 하고, 막노동판에도 가고. 그 얘기 시작하면 한 스무 가지는 줄줄이 나오는데. (웃음) 몇년 전에 한석규가 감독을 해보라고 했다. 형제가 다 설치고 다닌다고 할까봐 포기했다. 그런데 제작하겠다니까 말리더라. 너무 머리 아픈 일이라는 걸 아니까.
한국 영화계는 꽤 배타적이다. 제작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다 옛날이야기다. 한석규는 <초록물고기> 찍고나서야 영화배우라고 불러줬다. 그전까지는 쟤가 탤런트지 무슨 영화배우,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TV에서 조금만 뜨면 제작자들이 돈 싸들고 가지 않나. 얼마 전에 어떤 배우 허벅지 보러 아줌마들이 극장에 몰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배우 허벅지 인기 사라지면 어떻게 하려고. 배우들이 개런티 너무 높게 받는다, 욕을 하는데 배우들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지 않은가. 70명이 함께 영화를 만들어서 1억원을 벌었다고 그걸 70등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작자로 포부가 있다면.▶ 이것저것 어려운 일은 있지만, 정작 영화 만드는 일은 가장 어렵진 않다. 스탭들, 제작부나 연출부들, 한달에 고작 50만원이나 가져갈까. 그걸 개선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일 텐데,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