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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수용 영상물등급위원장
2004-01-10

"일본 영화 수입, 아직은 눈치만 본다", "제한상영관 신설로 논란 종식시킬 것"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올해도 논란의 초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두 차례 위헌 결정에 따라 공연윤리위원회(공륜)가 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를 거쳐 영등위로 개편됐지만 `검열'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02년의 <죽어도 좋아>와 2003년 <킬 빌>의 `제한상영가' 파문에 이어 올해는 일본 영화가 전면 개방되는 해여서 논란과 시비는 피하기 어렵게 됐다.

1977년 <야생>과 86년 <허튼 소리>로 검열의 가위질에 가장 큰 피해를 봤던 영화감독에서 심의기구의 수장으로 앉은 김수용(金洙容ㆍ75) 영등위원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9일 오후 서울 남산 자락의 영등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국제영화제 수상작이 아니면 수입될 수 없었던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일본 영화가 올해부터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사실상 일본 영화에 대한 빗장이 모두 풀린 셈이다. 수입추천을 신청한 일본 영화가 얼마나 되는가.

▲아직까지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다. 지난 2일 무라카미 류 감독의 <도쿄 데카당스>와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수입추천을 신청했고, 7일 기타노 다케시의 <브라더>가 뒤를 이었다. 이 영화들은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문제가 될 만한 영화가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논란을 빚은 영화와 제목이 똑같은 <죽어도 좋아>가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인이 간부(姦夫)와 공모해 남편을 죽이고 정사를 벌이는데 정말 눈뜨고 보기 어렵다. 음란물에 해당하는 포르노 영화는 수입금지 품목이어서 세관에서 걸러지겠지만 일반 영화를 가장한 영화들이 문제다.

그런 영화들을 수입추천해준 뒤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기면 또 논란이 재연될 수밖에 없겠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9일) 오전에 전국 30개 정도의 극장으로 제한상영관 체인을 운영하겠다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어제(8일) 영화수입추천소위원회에서 <칼리귤라>라는 이탈리아 영화에 대해 불합격 결정을 내렸는데 그 영화를 수입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칼리귤라>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기면 자기들이 상영하겠다고 하더라. 이들의 진의가 확인되면 수입추천을 해줄 생각이다. 제한상영관이 들어서면 여기에 맞춰 일본의 자극적인 성인영화가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제한상영가 등급 논란이 그러면 끝날 수 있다는 말인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수입업자나 제작자들은 제한상영관이 없어 해당 등급의 영화를 못 들여오거나 만들 수 없다고 하고, 제한상영관 운영 희망자들은 해당 등급의 영화가 없어 제한상영관을 못 만든다고 한다. 법에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만들어놓고 우리가 그 등급을 주면 영화 상영을 금지하는 조치라고 비난을 해대니 답답하다. 그동안 우리는 출구 없는 긴 복도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지냈다. 잘하면 희망이 보일 듯도 한데 형법상 음란죄 조항이 엄연히 살아 있는 게 걸림돌이다.

영등위원장 4년 반 하다가 하도 욕을 많이 들어 수명이 더 늘어났겠다.

▲욕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지만 모두 까닭없는 비방과 공격이어서 보탬이 될지 모르겠다. 반세기 동안 영화에 매달리며 남을 괴롭히거나 정도에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이 자리에 앉다보니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인물로 찍혔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내가 표현의 자유 신장에 기여했으면 기여했지 방해한 적이 없다. 위원회 운영도 민주적 원칙을 지키고 있어 내 독단으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죽어도 좋아> 파동 때는 위원장이 사견을 공개적으로 밝혀 논란이 됐다.

▲그렇지 않다. `영화가 좀 세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나중에 `18세' 등급을 받은 필름은 성기 노출 장면을 어둡게 처리한 것이다. 박진표 감독이 내 제자(중앙대)이기도 한데 앞으로 이런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한다.

처음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던 <킬 빌>은 수입사가 10여 초 잘라낸 뒤 `18세' 등급을 받아 사실상 검열의 효과를 갖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도 못했다. 등급분류소위원회가 적절히 판단했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자를 권한도 없지만 자르라고 권유하지도 않는다. 수입사가 개봉을 위해 자진삭제한 것까지 우리가 책임지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일부 젊은 영화인들은 자진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는데….

▲제대로 역할을 못해 밀려났다는 오명을 쓰고 싶지는 않다. 99년 영등위 출범 때 1기 위원장을 맡아 3년간 일한 뒤 그만두려고 했다. 그러나 2기 영등위원 중에 위원장 할 만한 영화인이 없어 할 수 없이 십자가를 진 것이다.

<킬 빌>은 비디오등급분류 때 무삭제로 `18세' 등급을 받아 또 논란을 빚었다.

▲그건 선례가 있다. DVD는 완제품으로 들여오기 때문에 부분 삭제가 어렵다. 소위원회가 알아서 판단했겠지만, 나도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보는 극장용 영화보다 개인이 보는 비디오에 대해 더 너그러운 기준을 적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아직도 영등위가 영화 제작자나 수입업자에게 군림하려 든다거나 관료적이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절대 그렇지 않다. 민원인 유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점심도 함께 못 먹게 했다.

요즘 후배 감독들을 보면 어떤가.

▲최근에 <실미도>를 흥미롭게 봤다. <태극기 휘날리며>도 괜찮게 나왔다고 하는데 궁금하다. 우리 때는 제작비 규모도 작았고 제작자 밑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강우석 감독이나 강제규 감독은 영화 전체를 휘어잡고 연출을 하니 부럽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다.

요즘 허리우드 극장에서 김 감독의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롭겠다.

▲`열정, 대한민국영화 1954-2004'란 이름으로 한국영화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데 내 작품으로는 <안개>와 <만추>가 선보이고 있다. 늙은 감독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다. 월요일(12일)에 극장에 가서 관객과의 대화에도 나선다.

다시 메가폰을 잡아야 하지 않겠나.

▲물론이다. 나도 만년을 멋지게 장식할 작품을 남기고 싶다. 요즘 머리 속에서 시나리오를 다듬고 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이병주 원작소설 <마술사>를 스크린에 옮기는 것인데 금욕을 소재로 인간 근원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수도자의 신비로운 관념 변화를 화면에 담을 수 없었으나 이제는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졌다. 이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국내 투자가 여의치 않으면 돈을 대겠다는 일본 투자자도 있다.

김 감독 영화가 다시 등급 논란에 휩싸이는 기묘한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혹시 여기도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있을까.

▲우리 세대 감독들은 모두 자기 검열에 익숙한 사람들이어서 `등급외' 판정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후임자들의 전관예우를 바라지도 않고. 혹시 `너도 이제 당해봐라' 하고 더 혹독하게 심의할지도 모르지.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