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 다들 눈감아! 이렇게 떠들면 촬영을 어떻게 해, 응? 거기 빨간 모자! 누가 눈 뜨랬어!” 대략 300여명으로 꽉 차버린 초등학교 소강당 내. 무대 위의 한 남자가 확성기에 대고 외친다. 운동회나 발표회를 앞둔 연습시간 때 좋아라 떠드는 아이들을 혼내는 선생님의 모습 같다. 디지털 장편 <철수와 영희>를 연출하는 황규덕 감독은 대전 대덕초등학교 4, 5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를 엑스트라로 모아놓고 통제가 되지 않아 열심히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1회 집중력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감독이 확성기를 내리고 스탭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하는 동안 분위기는 금세 흐트러진다.
<철수와 영희>는 초등학교 4학년 철수와 영희의 풋풋한 로맨스이자 이를 통해 아이들의 소박한 꿈을 이뤄주려는 따뜻한 영화다. 교내음악경연대회날 악기를 들고 무대에 선 4학년3반 아이들이 Donna Donna의 연주를 무사히 마쳐갈 무렵, 영희가 객석 끝을 응시한 채 꼼짝도 않는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을 잃었던 아이는 친구 철수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관객에게 인사한다. 다른 친구들도 함께 허리를 굽힌다. 조용했던 장내에 박수 소리가 퍼진다.
◆ 철수 역의 박태영은 대덕초등학교생 대상 오디션에서 뽑힌 아이다. 퉁퉁한 몸으로 활발하게 촬영장을 누비는 태영이는 하은이의 말에 따르면 “감독님이 제일 이뻐하는” 배우. 감독은 태영이가 먹을 걸 엄청 좋아한다며, “연기가 갈수록 좋아지는, 만족감 100%”라고 평했다. (왼쪽사진)
◆ 아역배우 전하은은 <연애소설>에서 이은주의 아역으로, <여섯개의 시선>에서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 편에 출연했던 경력있는 배우. 시종 의젓하고 진지한 태도가 기특한 친구다. (오른쪽 사진)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89), <지금 우리는 사랑하고 싶다>(1991), 두편을 연출한 뒤 13년 만에 만드는 영화 <철수와 영희>는 대전에서 모두 촬영된다. “신도시와 구도시의 느낌이 병존하는 곳이다. 서울은 그림이 워낙 삭막해서 찍을 수 없다”는 감독의 말은 이 영화의 느낌을 짐작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10년 전만 해도 꼬맹이들이 귀찮았는데 2∼3년 전부터는 귀여워지더라”는 마음을 담아, 감독은 군기잡기 쉽지 않은 꼬마들을 모아놓고 동심을 그리고 있었다. 완성된 그림은 가족의 달 5월에 전시될 예정이다.
대전=사진 이혜정·글 박혜명
◆ 역시 대덕초등학교생인 김상훈이 연기하는 성우는 영희네 학교에서 가장 인기많은 남학생이다. (왼쪽 사진) 본래 성우와 공인된 ‘커플’이던 유리가 영희를 미워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유리 역은 연기자를 꿈으로 정한 박송이가 맡았다. (가운데 사진)
◆ 영희네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불독’ 선생님 정진영은 고속도로가 막혀 늦게 도착했다. 감독과 대학 선후배 사이로 오랜 친분을 가진 정진영은 이 영화의 출연을 ‘우정출연’이 아니라 ‘의무출연’이라고 했다. (오른쪽 사진)
◆ 아이들 통제하랴 촬영지시하랴, 현장은 정신이 없다. (왼쪽사진)
◆ 돌아가신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 건 영희가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었던 소원. <철수와 영희>가 이뤄주는 꿈의 한 가지가 이것이다. (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