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패배에 굴하지 않는 신념이여!
주말 내내 비가 내렸다. 11월에 내리는 비는 참 난감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간에, 저 홀로 내린다. 천식 발작처럼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내리는 비, 내려서 잠시 자신을 증거하고 다만 잊혀지기 위해 내리는 비. 끝내 소리가 되어 울리지 못한 깊은 탄식처럼 11월의 비는 어떤 절실함을 마음에 묻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11월을 비로 기억하지 않는다.
(November rain)를 듣다가 그 슬픔에 감염돼 하루종일 파업했다. 세상에는 대단하지만 아무것도 안 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의 대단한 사연은 언제나 11월의 비처럼 스쳐간다. 우리는 대단한 사람들의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너무 오래 속아왔다.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의 전기적 영화 <선택>을 보고 우울했다. 단지 그가 세계 최장기수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넬슨 만델라는 27년을 감옥에 있다가 출옥해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만델라 스토리는 <빠삐용>이나 <쇼생크 탈출>처럼 옥중의 고통이 해피엔딩의 감동을 배가하는 촉매 구실을 한다. 그래서, 관객은 옥중의 고통에 대한 공유의 부담없이 곧바로 감동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종신형을 받고 수감하다 10년 만에 병으로 옥사한 그람시의 경우 관객은 다른 길을 통해 감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가 옥중에서 남긴 원고지 삼천장 분량의 옥중수고를 그의 분신처럼 숭배함으로써 고통의 공유에 대한 부채를 유보할 수 있다. 어쨌거나 살아남아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됐거나, 죽어서 신화 속의 영웅이 된 인물들은 해피엔딩을 염원하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김선명은 이 기대를 배반한다. 그의 삶에는 해피엔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구가 없다. 공산주의 이념에 매료돼 북한을 선택했다가 1951년 25살 때 체포돼 수감된 그는 45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석방된다. 하지만 그를 환영하는 사람은 아흔네살의 어머니밖에 없다. 형제들은 여전히 만나기를 거부하고, 남과 북은 이미 그의 존재를 잊었다. 그는 몇몇 인권단체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할 역사의 흔적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결국 그는 북한행을 선택했지만, 거기에 그가 꿈꾸었던 세계는 없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위해 전향서를 거부하며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기로 결심했을까?
영화 <선택>의 관객은 실현되지 않은 이념을 위해 인생을 바친 한 인간의 모습과 맞닥뜨린다. 이 상황은 몹시 불편한 상황이다. 이념에 속아 인생을 허비했다고 말하기에는 그 지조가 눈부시다. 그렇다고, 신념을 위해 인생을 바친 지조를 찬양하자니 살아남은 현실주의자들의 삶을 공박해야 한다. 이 불편함을 가장 간편하게 벗어나는 길은 일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즉, 그의 삶은 사회주의라는 잘못된 신념을 숭배한 어리석음이었다고 매도하거나 영웅 신화의 틀을 빌려서 이념을 위해 인생을 바친 사상가로 숭배하는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이런 태도는 불편한 한 개인의 삶을 재빨리 치워버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영화 <선택>이 이런 의도에 맞서는 방식은 ‘이념의 선택’ 구도를 ‘삶의 선택’으로 바꾸어놓는 것이다. 감독은 왜 김선명이 전향서를 쓰지 않았는가를 감옥에서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가 45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애초에 갖고 있던 이념에 대한 신념 때문이 아니다. 그의 이념은 감옥에서 전향을 강제하는 야만적인 폭력과 싸우면서 동료에 대한 애정과 불의에 대한 거부를 통해 새롭게 형성된다. 그리고, 하나둘 동료들이 전향서를 쓰고 나갈 때에도 그가 남은 것은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배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택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버리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어느 이념이 옳으냐는 정치적 판단의 세계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선택한 자의 독백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 그는 그걸 운명이라고 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그걸 선택이라고 했다.
나는 <선택>을 패배할 줄 알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는 순간에 놓인 인간의 얘기로 봤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의 대단한 이야기. 11월의 비처럼 끝내 소리가 되어 울리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이야기. 대단한 인간들의 아무것도 아닌 고함에 묻혀버린 이야기. 11월에는 그 낮은 속삭임에 귀기울여보자. 남재일/고려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