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카시아>에 등장하는 미숙(심혜진)의 직업은 섬유공예 작가다. 예쁘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집안에서 그녀는 색색의 천을 짓는 것으로 아이의 빈자리를 메운다. 아동보호소에서 진성(문우빈)을 데려온 날, 그녀는 아이를 위한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감독은 전작 <여고괴담>에서 미술반 여학생을 등장시킨 데 이어 이번에도 예술과 무관하지 않은, 섬유공예 작가라는 직함을 등장시킨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사건의 전말을 폭로하는 그녀의 섬뜩한 자수, 집안의 암울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벽걸이 작품은 그 강렬한 이미지만으로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중요한 장치다. 미숙의 방 한켠에 놓여 있는 직기의 주인은 실제 섬유공예 작가인 조혜은(27)씨. 심혜진에게 간단한 직기 작동 요령과 위빙(weaving) 기술을 가르친 것도 그녀다. 하나 더, 거실과 진성의 침실을 감싸고 있던 붉은 실의 섬뜩한 향연도 그녀의 손끝에서 일일이 살아났다. 그때 쓰인 붉은 실의 가격만 80만원. 그래도 방과 거실을 다 채우기엔 부족해, 거실신을 찍고 난 뒤 다 풀어서 손으로 직접 감은 뒤 다시 방을 꾸몄다. 공이 들어간 만큼 화면은 제대로 빛을 발한다.
미숙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진성이 벽걸이 융단을 짜느라 걸려 있던 천의 올을 푸는 장면은 조혜은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열흘 가까이 걸려 태피스트리를 짜느라 어깨가 무너졌건만, 풀리지 않는 성질 덕분에 나중에 다른 천으로 바꿔야 했기 때문. 전 과정이 수공예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태피스트리의 가격만 해도 100만원에 달하는 것이었다. 애초 두달 정도를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 한달 정도 초과되면서 몸고생, 맘고생이 있었지만, 덕분에 독특한 화면을 자랑하는 작품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도일이 진성을 살해하는 장면을 천에 담은, 마지막 작품 역시 여러 번 수정된 모습이다. 처음엔 도일의 얼굴과 삽, 나무 등에 두툼한 자수를 입혀 입체감을 살렸으나, 감독이 원한 건 디테일한 자수보다는 천을 덕지덕지 입힌 듯한 양감이었다. 그림이 아닌 천으로 대하는 섬뜩한 이미지는 관객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특이한 소품 중 하나다.
처음으로 영화에 도전했다는 그녀는 어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 다양한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다. 전주대 섬유디자인과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내년 2월에는 개인전도 연다. 석사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작품이 감독의 눈에 띄어 <아카시아>에 합류하게 된 것. ‘사물에 대한 존중과 상상력의 확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창과 눈, 자연과 인공물이 어우러진 그녀의 작품은 내년 2월25일 인사동에서 만날 수 있다. 글 심지현·사진 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