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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이란영화 <내가 여자가 된 날>
2003-10-28

탈출하고 싶어, 여성이란 굴레로부터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됐던 이란의 ‘운동권’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1996년 16살이 된 딸 사미라가 영화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가족과 함께 마흐말바프 영화학교를 만들었다. <내가 여자가 된 날>은 마흐말바프의 아내 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이 거기서 지낸 4년의 결과물이다. 세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여성의 인생을 축약한 이 아름다운 우화는, 마흐말바프 영화학교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해 함께 사유하고 고민하는 터전임을 보여준다.

소년·아낙·할머니가 한으로 그리는 세편의 에피소드

하버는 생일인 오늘도 동네 남자친구 하싼과 놀러나갈 생각에 눈을 떴다. 하지만 검은색 차도르를 사들고 돌아온 엄마와 할머니는 여자는 9살부터 남자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말한다. 태어난 시간까지 따져 9살 생일까지 얻어낸 단 1시간. 숙제 때문에 하싼이 방 안에 갇히는 바람에 그 시간 동안 하버가 한 일이라곤 모래에 막대기를 꽂아놓고 시간을 재는 것뿐이다.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아후는 말을 타고 달려오는 남편을 피해 자전거 경주에 나선다. 키쉬 섬의 아름다운 해안가 도로에서 검은 차도르를 쓴 여성들은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삶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 달리고 또 달린다. 할머니 후러는, 남편이 죽은 뒤에야 쇼핑을 나간다. 손가락에 매듭을 잔뜩 묶고 가서 평생 사고 싶던 물건을 하나씩 살 때마다 매듭을 하나씩 푼다. 그 물건들이 맑은 하늘 아래 바닷가에 진열되는 장면은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신비로움과 상징성을 띠게 된다.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만나는 <내가…>는 한 이란 여성의 삶, 나아가 한 여성의 삶을 말하는 영화다. 억압의 상징이었던 하버의 차도르가 후러가 떠나는 뗏목여행의 돛이 되는 장면에서 감독은 그 갑갑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싶어한다. 백두대간은 31일 씨네큐브에서 이 영화를 개봉하며 이후 2주 간격으로 딸 사미라의 <칠판>, 아버지 모흐센의 <사랑의 시간>을 릴레이 상영할 예정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 백두대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