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가 모여 있다는 ‘아집’(AZIP)을 찾아가면서 내심 ‘꿀꿀한 남자 냄새 가득한 어수선한 작업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웬걸. 회의용 원탁 테이블 뒤에 있는 2인용 침대에는 정갈해 보이는 대나무 요가 깔려 있었고 이불은 검열 직전 군 내무반에서처럼 각지게 개어져 있었다. 여기까지는 기자가 온다니까 신경써서 치웠을 것이라 치자. 하지만 흰색 이불보는 급조한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 하얬다. 신작 포트폴리오가 든 파일을 들고 나타난 이광욱(26) 감독 역시 진회색 스웨터에 베이지색 남방을 받쳐입은, ‘보기 드문’ 깔끔한 모습이었다.
“아집은 애니메이션의 ‘a’와 하우스의 우리말인 ‘집’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집이란 뜻이죠.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은 팀원들의 고집과 열정이라는 의미도 있고요.”
‘아집’을 이루는 네 사람은 이 감독과 이지윤(26), 문형범(25), 허복문(26)씨다. 모두 청강문화산업대 애니메이션과 동기동창이다. 1학년 때 프로젝트를 위해 결성된 팀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역할 분담은 확실한 편이다. 이 감독이 연출과 시나리오, 동화를, 이씨는 캐릭터디자인과 원화를, 문씨는 연출과 편집을, 허씨는 레이아웃과 배경을 맡고 있다. 졸업작품 <달동네 토끼 살해사건>(2001)은 이들을 당장 주목받는 팀으로 만들었다. 그해 춘천애니타운페스티벌 입선을 시작으로 2001PISAF 특별상, 2002 동아LG 캐릭터디자인상, 2002 TTL인터넷영화제에서 디지털 미디어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사전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된 <모기… 한숨을 쉬다>는 올해 SicAF에서 신인감독상을, 부산디지털콘텐츠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았다.
“ <모기…>는 <달동네…>보다 화면적 밀도는 높아졌지만 스토리의 디테일에서는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신작에서는 그런 점을 보완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요즘 신작 두편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다. 와 최근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사전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된 <아기나무>가 그것이다. 두 작품 모두 지금까지의 스타일에서 변형을 시도했다. <아기나무>는 아기를 점지해준다는 삼신할미를 주제로 한 이야기다. 절지애니메이션의 느낌을 부각시켰다. 특유의 반전은 여전하지만 밝고 경쾌했던 이전 작품에 비하면 이미지가 훨씬 어둡고 무겁다.
는 결혼을 앞둔 아버지의 심경을 그린 작품. 수채화풍에 개곡선으로 마무리한 그림과 잔잔한 내용이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이웃의 야마다군>과 비슷해서 이 감독에게 물어봤더니 그는 “맞다. 따라했다”고 말했다.
“다카하다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고 그의 <이웃의 야마다군> 역시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사람들간의 따뜻한 이야기를 화면으로 보여주는 그의 작품세계를 저희 나름대로 소화해보고 싶었거든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재능있는 독립작가들이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 이 감독은 단편을 통해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해본 뒤 멋진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요즘 인터넷으로 자기 작품 만들어서 올리는 분들 중에 정말 뛰어난 분들이 많아요. 그런 그림들을 보면서 ‘지면 안 되지’ 하고 각오를 새롭게 합니다.”
네 남자의 다부진 다짐이 집(zip)파일처럼 늘 가득 채워져 있었으면 한다. 정형모/ <중앙일보> 기자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