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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손끝을 보지 말라니까
2001-05-23

김지운 칼럼

며칠 전 ‘오늘 한 일은 없지만 끼니는 때워야지’ 하면서 식당에 들어갔다가 텔레비전에서 <조용한 가족>을 방영한다는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처음엔, ‘아니 공중파에서 <조용한 가족>을?’ 하면서 놀랐다가 주말의 ‘명화’라기에 더욱 놀랐다. ‘아… <조용한 가족>이 이번주 주말의 ‘명화’로 선정됐구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주말을 기다리게 되었다.

항상 그랬지만 주말은 찾아왔고 명화를 하는 시간이 되어서 모든 전화기의 배터리를 제거한 다음- 그 시간에 누가 나한테 전화를 걸어, “지금 뭐하냐?” 물어보면 대답하기 쑥스러워서- 방 안의 조명도 알맞게 맞춰놓고 몇번인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어서 명화하기를 기다렸다.

지루한 광고 때문에 잡았던 자세가 그새 흐트러지긴 했지만, 속으로 ‘명화라서 광고가 많이 붙은 모양이군’ 하면서 별 불평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광고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드디어, 화면이 바뀌어 시퍼런 배경에 ‘19세 미만 관람 불가’라는 자막이 ‘19세 미만의 올곧은 가치관과 정신을 가진 사람은 관람하기에 적당치 않은 작품으로…’ 어쩌고 하는 문구와 함께 떠올랐다.

난 씨익 웃으며 ‘그럼 그렇지. 그래도 코믹잔혹극인데’ 하면서 19세 미만 관람 불가 자막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조용한 가족>을 공중파에서 한다는 것 자체에 의심을 가졌던 나로선 거의 ‘노커트’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했다가 어김없이 잘려나간 잔혹하고 에로틱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4년 전 <조용한 가족>을 만들고 연출부에 작품평을 해보라고 했다가 연출부 막내한테 코믹잔혹극인지 알았는데 코믹잔잔극이라는 등 온갖 멸시와 수모를 당한 뒤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아 그 앙갚음으로 아직까지 연출부로 부려먹으려는 상황인데 정말 그나마 거기서 차 떼고 포 떼니까 마와 상으로 지그재그로 가게 생긴 꼴이 되었다.

그렇게 커팅을 자의적으로 한다면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영화를 띄엄띄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영화 <친구>를 예로 들어보자(다른 감독의 영화를 끌어들여 죄송하지만, 요즘 워낙 뜨고 있어서). 그 영화의 잔혹한 장면 중 하나인 장동건이 칼 맞는 장면을 뺀다면, 장동건이 비오는 날 우산을 안 가지고와서 우산장수를 불렀는데 우산장수가 달려와 우산대로 장동건을 마구 찌르자 장동건이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라고 하는 상황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즘 뜨는 음료 CF의 경우, 정우성이 차에 치어 얼굴에 큰 부상을 당해 누워 있자 정우성을 친 장쯔이가 놀라며 차에 친 정우성에게 달려가는 것처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항상 예가 적당치 않아서 미안하지만, 어쨌든 만든 사람 입장에서 못나도 내 자식인데 팔다리 뚝뚝 떨어진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럼 19세 미만 관람 불가는 왜 그렇게 첫 화면부터 무시무시하게 써놓은 걸까?(사실, 전 시간을 통해 가장 무서운 장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극장에 가는 19살 이상인 사람들과 비디오 보는 19살 이상인 사람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는 19살 이상인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얘기라는 것인지 알 듯 모를 듯했다.

물론 부분적으로 잘려나간 장면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다. 내가 <조용한 가족>을 만들면서 가장 신경썼던 것들, 그 모든 잔혹하고 에로틱하고 호러적인 컨벤션들을 낄낄거리는 유머로, 하나의 의도된 농담처럼 보이게 하고자 한 것인데, 이렇게 창작자의 기본 컨셉을 흔들어놓고, 개인적인 작풍이라 할 수 있는 영화적 ‘유희정신’이 부정되고 몰이해되었다는 것이 아쉽고 착잡했다는 말이다. 손끝을 보지 말고 손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빨리 끝나니까 좋긴 좋았다.

김지운/ 영화감독·<조용한 가족> <반칙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