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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플갱어> 감독 구로자와 기요시
2003-10-07

"철저히 코미디라 생각하고 출발했다"

일본의 구로자와 기요시(48) 감독이 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자 한국에서 처음으로 극장개봉을 할 자신의 작품 <도플갱어>를 들고 지난주 부산을 찾았다. 3년 전 자신의 특별전을 마련한 전주영화제 방문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다. 1983년 <간다천 음란전쟁>이라는 핑크영화로 데뷔했지만, 그는 흔한 장르와 소재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와 결말로 나아가는 호러영화 <큐어>(1997) <회로>(2000) 등을 통해 세계 각지의 국제영화제의 가장 인기있는 초청작 감독이자 일본 영화계의 선두작가로 떠올랐다.

그의 작품은 흔히 세계의 부조리함과 그에 대한 숨막히는 절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큐어>에서 주인공은 범죄자가 되고, <회로>에선 인터넷을 통해 나타난 귀신들을 본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세상에서 사라져간다. 하지만 정작 감독 자신은 “정말 난 낙천적인 사람”이라 말했다. “세상이 터무니없이 모순되고 절망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이 망해도 나만은 살아남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낙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그 증거 아닌가.”

<도플갱어>는 그와 일본의 ‘국민배우’라는 야쿠쇼 고지가 여섯 번째 만난 작품이다. 자신의 분신을 만나 죽이고 죽고 새로운 자신으로 나아가는 이 작품에 대해 감독은 “철저히 코미디라 생각하고 출발했다”고 말한다. 흔히 생각하는 상업적 코미디는 전혀 아니지만, 그 코미디는 이렇다. “사람은 모순된 존재다. 지금의 나와 저녁에 밥먹는 내가 다르고, 내일의 내가 또 다르다. 모순된 자신과 부딪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설정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또 야쿠쇼 고지의 팬들에겐 2명의 야쿠쇼 고지를 만난다는 점에서 2배의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고.”

구로자와 감독은 영화광이다. 그의 영화에선 미국부터 유럽까지 온갖 장르와 감독에 대한 인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 그는 인용에서 그치지 않는다. 철저히 귀신영화에서 출발했던 <회로>가 종말론으로 향했듯이, 히치콕 분위기의 스릴러에서 출발한 <도플갱어>는 자신의 도플갱어를 죽인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로드무비가 후반부 이어지며 존재의 철학적 질문에까지 나아간다. “영화나 문학에서 고전적 소재지만 거꾸로 그만큼 변경한다든지 사람들의 인식을 역전시키는 재미가 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 그는 2002년에 만든 2편의 영화, <도플갱어>와 <해파리>(원제 <밝은 미래>)를 들고 온 데다 부산프로모션플랜(PPP)에 신작 <로프트>를 내놓았다. 한국의 미로비젼이 제작을 맡을 이 영화는 조용한 해변마을 다락방으로 이사온 여류작가가 고대중국 여왕의 미이라를 몰래 옮기는 남자를 목격하고 여자유령을 만나면서 비밀들을 밝혀나간다는 내용. 구로자와 감독은 방한기간 중 제주도 등 촬영장소 물색에도 나설 계획이다.

그는 <회로>부터 작품의 결말이 좀더 “미래를 향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칸 영화제 경쟁초청작인 <해파리>에서 그것은 두드러진다. 그 영화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의 미래가 있다’는 식이 아니다. “나이든 이건, 젊은이건 각자에겐 밝은 미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 각각의 삶과 미래를 인정해주지 않는, 자신의 가치관만을 고집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구로자와 감독은 여전히 절망하면서도 희망으로 나아가는 영화를 만든다. 부산/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