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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마누라2>, 웃기지도 통쾌하지도 않은 이유는?

올 추석 극장가는 코미디 3파전이 될 거라 예상된다. 2001년 <조폭마누라>, 2002년 <가문의 영광>이라는 추석 초히트 상품은 2003년에도 ‘코미디 대박’을 기대케 하여, 추석 겨냥 출시품들을 코미디 일색으로 만들었다. 소재가 비교적 창의적이며 훈훈한 인간미도 느껴지는 <오! 브라더스>와 감독의 전작 <라이터를 켜라>에 이어 여전히 산만하나 ‘김정은’이라는 확실한 코미디캐릭터를 앞세운 <불어라 봄바람>, 그리고 <조폭마누라2: 돌아온 전설>(이하 <조폭마누라2>)이 그들이다. 일단 <조폭마누라2>가 흥행에서 가장 유리해 보인다. <가문의 영광>의 감독이 <조폭마누라>의 속편을 만들었다니, 흥행 계보를 잇는 적자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계보학적 예측은 영화 시작 10분 만에 헛소리로 판명난다. 코미디도 액션도 드라마도 모조리 지겨워졌으니, 이런 변이 있나! 이 글에서 <조폭마누라2>의 패인을 짚어보겠다.

두 흥행작은 어쩌면 매우 비슷해 보인다. 모두 조폭이 민간인(?)을 속이고 협박하여 결혼하는 이야기로, 영어 제목마저 ‘My Wife Is a Gangster’와 ‘Marrying the Mafia’로 구분이 힘들 정도다. 따라서 <가문의 영광>의 감독이 <조폭마누라>의 속편을 만드는 것은 무난한 ‘동종 결합’이라, 상승작용에 의해 ‘왕대박잔치’가 나리라 예상했을 터이다. 그러나 두 영화는 소재만 비슷할 뿐 근저의 생각은 아주 딴판이어서, 이 둘을 무난히 결합시키려는 기획은 애초에 글러먹은 발상이었다.

두 영화는 가부장제를 둘러싼 태도와 입장이 상반된다. <조폭마누라>에서 은진은 언니의 소원을 위해 조폭 신분을 속이고 ‘착한 민간인’과 결혼한다. 그녀는 가짜 부모도 만들고, 즉석에서 아파트를 걸고 청혼하여 ‘결혼이라는 웃기는 짓’을 어떻게든! 해버린다. 남편 따위 개무시하다가 언니의 요청으로 겁탈하듯 덮쳐서 임신한다. <조폭마누라>는 남자들이 주축을 이룬 ‘조직세계’(이건 꼭 조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에서 중간보스가 된 여자의 사회적 성취를 보여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그녀(들)이 종속적인 관계에 놓여질 수밖에 없는 ‘결혼제도’가 그녀에 의해 어떻게 무시되고, 조롱되고, 전복되는지를 보여준다. 바로 이 점이 <조폭마누라>가 (특히 여성)관객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요인이자, 흥행과 가치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착한 민간인 남편은 조폭임을 알고 나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인륜을 위해’ 폭력과 맞서 싸우다가 아내의 세계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가문의 영광>은 반대이다. 그녀는 패밀리의 고명딸로 곱게 자라,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아버지, 오빠가 잡아온 ‘서울법대생’과 결혼한다. 여기에는 전복성이 있다기보다 ‘참혹한 현실’이 있다. 처음엔 이질적이었던 남자가 (인륜이 아니라) 권력의 이끌림에 의해 동질화되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조폭과 엘리트의 경계가 교란되며 재미가 발생한다.

<조폭마누라>가 철저하게 모계적이라면, <가문의 영광>은 철저하게 부계적이며, 전자에서 남자는 생물학적 존재였을 뿐 전혀 남근적 존재가 아닌 반면 후자에서 남자는 가문을 잇고, 영광을 재현하는 남근적 존재이다. 전자에 의해서는 결혼식이 ‘나이트클럽 개업식’과 ‘무술시범’으로 냉소되지만, 후자에 의해서는 ‘신성한 것’으로 눈물겹게 사수된다. 이렇듯 두 영화는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기에,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서사 안에 갇혀 있는 <가문의 영광>의 감독이 <조폭마누라>의 전복성을 살려내리라 기대한 것은 (<가문의 영광>의 첫 장면처럼) ‘남의 다리 긁는 짓’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조폭마누라2>에서의 페미니즘적 수행은 임신부 배를 차는 강도를 응징하거나, 누가 봐도 저열한 야채장수를 혼내주거나, 소녀를 창녀촌에 팔겠다고 협박하자 ‘언니가’ 구하러가는 등의 지당한(따라서 페미니즘까지 들먹일 필요조차 없는) 에피소드에 그치며, 거세의 상징인 가위를 휘두르는 그녀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는 해소되지 못한다.

조폭과 민간인이 결합하고자 하는 욕망이 혼인을 넘어 아예 한몸 속에서 구현되고자 했던 걸까? 그녀가 굳이 기억상실증에 걸릴 이유가 대체 뭐였을까? 그녀는 <롱키스 굿나잇>의 그녀마냥 자신을 잊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짜임새 있던 <롱키스…>에서와 달리 이야기는 하염없이 삼천포로 흘러간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롱키스…>를 차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롱키스…>에서 우리는 민간인이었던 그녀의 놀라운 과거를 추적하며 긴장을 느끼지만, <조폭마누라2>에서 우리는 그녀가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안다!(그녀와 그녀의 이웃만 모른다) 그나마 그녀의 민간인으로서의 삶 그 자체가 재미있지도 않다. 우리는 재미없는 숨바꼭질 놀이, “쌩까는” 장난 그만하고 그녀가 빨리 변신하기만을 바라는데, 그것이 지연되자 짜증이 솟고, 겨우 변신이 되었을 땐 이미 늦었다. 영화는 그녀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 엉뚱한 궁창에 처박힌 채 질질 끌려다니다가 전편의 유산을 죄다 잃고서, 늘어진 반죽, 불어터진 면발이 되고 말았다. 하다 못해 <가문의 영광>에서 그 재미난 표정들을 연출한 솜씨는 다 어디로 갔는지? 웃으려다 웃지 못한 욕구불만이 몸 속에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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