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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영매-산자와 죽은자의 화해>의 박기복 감독
2003-08-28

"진도의 당나무를 붙잡고 신을 불렀지요"

박기복(38) 감독은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 다큐멘터리 제작사 푸른영상에 들어가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를 만든 것이 1994년이니 그의 감독 이력도 10년째를 맞는다. 지상파 방송사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고, 99년 <냅둬>로 서울다큐멘터리영상제에서 대상도 받았다. 그가 이제 처음으로 일반 관객과 만난다. 지난해 완성한 <영매(零媒)-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가 9월 5일 마침내 개봉된다.

"10년 꿈이 이뤄졌습니다. 95년 <낮은 목소리>(감독 변영주)를 극장에서 보면서 나도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반드시 극장에 걸겠다고 다짐했지요. 기록영화와 극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면서 함께 가야 합니다.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던져준 감동을 우리도 줄 수 있도록 기회가 마련돼야지요."

그가 무당을 주목하기 시작한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대학 전공으로 철학을 택한 것도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 성철 스님의 일상을 찍어볼 생각도 했으나 93년 입적하는 바람에 포기하기도 했다. 그는 2000년 초 민속박물관에서 무형문화재 씻김굿 보유자 김대례 씨의 기록영화를 보고 무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결심한 뒤 2000년 6월 진도에 내려가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진도에 머문 것이 1년 정도 됩니다. 처음에 5명의 스태프가 꾸려졌으나 열흘이 멀다 하고 바뀌다보니 제가 모든 일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상황에 치이다가 하루는 진도의 당나무를 붙잡고 신을 불렀지요. 그런데 정말 어느 순간 섬뜩한 기운이 내 정수리를 타고 엉덩이 뼈까지 내려오더라구요. 해남의 한 무당한테서는 '당신도 우리처럼 신기(神氣)가 장난이 아니요, 당신도 우리 밥 먹을 거인데…'라는 말까지 들었지요."

<영매…>는 무당의 일상을 담는 다큐멘터리. 그러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굿판을 찍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작두를 갈 때 부정한 소리가 나오지 않기 위해 흰 천을 입에 물기도 하는데 마이크를 달고 조명을 비추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이 수월할 리 없었다. 제갓집(의뢰인)의 따가운 눈초리도 마음에 걸렸다.

"처음에는 멀찌감치 떨어져 굿판을 바라보기만 했어요. 망원렌즈를 써서 찍지도 않았고요. 오랜 시간 대화를 하다보니 무당이 먼저 `왜 주저하느냐'고 묻더라구요. 무당이 마음을 여니 그를 믿는 제갓집의 시선도 누그러졌지요."

제작비는 1억5천만원 가량 들었는데 주변에서 공짜로 해준 후반작업 비용까지 합치면 2억원이 넘는다. 연세대 철학과 2년 선배인 조성우 M&F 사장이 기꺼이 제작자로 나섰고,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사전제작비와 배급비용을 지원받은 것도 큰 보탬이 됐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는 해설을 모두 자막으로 처리했는데 극장 상영을 앞두고 톱스타 설경구의 내레이션으로 바꿨다.

"영화를 만들고 난 뒤 어머니가 `철이 많이 들었다'고 그러세요. 얼마 전 딸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거든요. 돌아가시고 나면 사소한 일로 섭섭하게 해드린 것도 모두 한으로 남을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어머니 말씀을 따르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가족에게 서로 상처를 주지 말자고 다짐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가 다음번에 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작품은 식물에 관한 다큐멘터리. 서정주의 시 `문 열어라 꽃아'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삼아 `죽은 나무 살리기' 전문가의 이야기를 엮어볼 생각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