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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광주영화제 추천작 13편 그리고 +α [3]

닛카쓰 영화사의 무국적 액션을 만난다

태양족의 주먹이 작렬하다

일본 영화사는 영화 제작사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오즈 야스지로와 미조구치 겐지 등 고전기 감독들은 쇼치쿠와 다이에이 등의 영화사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이것은 미국 할리우드의 역사와 어느 정도 흡사하다. 존 포드 같은 거장감독이 1930년대와 40년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어에서 빛나는 서부극의 걸작을 만들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일본영화에서 극적인 사건은, 다른 곳에서 있었다. 그것은 영화 제작사가 각개약진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개척하고 특정 장르를 제작사의 ‘브랜드’로 내걸면서 흥미로운 양상을 보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닛카쓰(日活) 영화사다.

닛카쓰는 스타와 장르, 그리고 신인감독을 키워내는 것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오락영화에 치중하는 닛카쓰의 노선은 악명 높을 정도였다. 1950년대에 닛카쓰는 <태양의 계절>이라는 히트작을 만들었다. 이른바 ‘태양족’ 영화의 출발이 된 것이며 닛카쓰 영화들은 일본의 전후세대의 지지를 얻었다. 이시하라 유지로는 당대의 스타로 떠올랐다. 닛카쓰에 모여든 사람들은 영화배우뿐만은 아니었다. 신인감독의 집합소가 되었던 것. 비평가 요모타 이누히코는 “당시 닛카쓰의 젊은 감독들은 할리우드의 필름누아르를 한없이 동경했다. 그리고 프랑스 누벨바그에 대해 비관적 태도를 보였다”고 술회했다. 닛카쓰의 신진감독들은 기존 영화관습과 문법을 희롱하는 과감한 실험을 벌였다. 스즈키 세이준, 마스다 도시오는 거의 유희적 경지에서 작품을 연출하는 경향을 보이곤 했다. 1960년대 전반의 닛카쓰에서 만들어낸 액션영화는 세계 영화사에서 유례가 없는 특징을 보인다. 미국의 서부영화에서 유럽 작가영화에 이르는 다양한 텍스트가 당시 액션영화에 반영되어 섞였던 것이다. 비평가들은 당시 닛카쓰 영화에 대해 ‘무국적’(無國籍) 액션영화라는 용어를 붙였다. 극단의 유희를 상업영화의 틀 내부에서 행했다는 것은 닛카쓰 액션영화의 독보적 의미를 웅변하고도 남는다.

한편, 1950년대 시대극에 주력했던 제작사 도에이(東映)는 1960년대에 ‘의협영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몸으로 살아가는 검객이나 싸움꾼들이 의리와 신의를 지키면서 피를 흩뿌리는 영화 시리즈를 통해 도에이는 시대극 영화의 변화를 꾀했다. 당시 도에이 의협영화는 가치와 세계관 등 전근대와 근대가 충돌하는 양상을 기록한 것이 특징적이다.

Branded To Kill | 1967년 | 98분 | 감독 스즈키 세이준

일본 B급영화의 전설

<살인의 낙인>

닛카쓰 액션영화, 하면 스즈키 세이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살인의 낙인>은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1960년대 영화 중 대표작이다. 영화에서 ‘넘버3’의 킬러는 조직의 음모에 걸려들고 그리고 어느 여성의 유혹을 받는다. <살인의 낙인>이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장르영화 요소를 충실하게 구비하면서 그것을 비틀기 때문이다. 살인청부 일을 하는 ‘하나다’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야쿠자영화의 주인공이다. 킬러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그 와중에 다른 음모의 덫에 걸려든다. 장르적 관습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살인의 낙인>은 장르적 요소를 조금씩 해체하는 미덕이 있다. 영화 속 공간도 기이하다. 나선형 계단이 펼쳐진 실내, 인적이 없는 어느 체육관 등 영화의 리얼리티는 교란되고 또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감독 자신은 “단순한 오락영화”라고 폄하하지만 <살인의 낙인> 등 그의 작품은 일본 B급영화의 전설이 되었다. 그것은 극도의 허무적 세계관과 절망적인 주인공들, 그리고 MTV 세계를 몇십년 일찍 경험한 것 같은 감독의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살인의 낙인>이 “너무 난해하다”라는 이유로 닛카쓰는 스즈키 세이준을 회사에서 해고했으며 이 사건은 감독을 더욱 컬트적 인물로 만들었다. 일본 장르영화를 논할 때 <살인의 낙인>은 빠뜨릴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Velvet Hustler | 1967년 | 97분 | 감독 마스다 도시오

마스다의 마스다 리메이크 프로젝트

<붉은 유성>

1960년대 닛카쓰 영화사는 액션장면을 중시했다. 다른 메이저 영화사들이 튼실한 드라마,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을 중시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 닛카쓰는 다른 노선을 택한 것이다. 당시 닛카쓰의 작품은 리얼리티가 떨어지고 현실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 그럼에도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붉은 유성>은 도쿄에서 다른 조직의 보스를 살해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스기우라 고로라는 이 남자는 회사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살게 되는데 다른 사건에 얽히게 된다. 원래 영화는 이시하라 유지로 주연작으로 만들어졌고 마스다 도시오 감독이 직접 연출한 적 있었다. 같은 영화를 1960년대에 마스다 도시오 감독이 리메이크한 것이다. 마스다 도시오 감독은 청춘드라마 <태양은 미쳐 있다>(1961), 액션물인 <태양으로의 탈출>(1962) 등을 만든 적 있다. 서구적인 모던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 마스다 도시오 감독의 연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붉은 유성>의 마지막 장면은 누벨바그 일원인 고다르 감독의 <네멋대로 해라>에서 영향받은 흔적이 있다.

The Man Who Stole The Sun | 1979년 | 147분 | 감독 하세가와 가즈히코

국가와 맞짱뜨다

<태양을 훔친 사나이>

1970년대 닛카쓰 영화사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이른바 성인영화의 시대를 연 것이다. 구마시로 다쓰미 등의 감독은 새로운 스타감독이 되었다. 과감하고 외설적인 영화를 통해 상업성과 작가성이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키워드를 섞었던 것. 이 와중에 등장한 인물이 하세가와 가즈히코였다. 그는 데뷔작 <청춘의 살인자>라는 영화로 일본 영화계에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영화는 부모를 살해하는 어느 청년에 관한 것으로 컬트적 기운이 역력한 작품이었다. <태양을 훔친 사나이>는 하세가와 가즈히코 감독의 차기작이다. 기발함이나 그로테스크함의 영역에서 <태양을 훔친 사나이>는 영화 마니아들에게 기억될 만한 작품이다. 기도라는 교사가 있다. 평범한 교사인 그는 집에서 혼자 힘으로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중이다. 국가와 전쟁을 하겠노라고. <태양을 훔친 사나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장르 관습을 조롱한다. 액션장면이나 시각적 볼거리를 갖추고 있음에도 영화는 기묘하게도 쉬지 않고 처연한 감정을 토해낸다.

Graveyard Of Honor And Humanity | 1975년 | 94분 | 감독 후카사쿠 긴지

그 때는 다 그랬다

<의리의 무덤>

<의리의 무덤>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패전 뒤 도쿄에서 활동했던 어느 야쿠자의 이야기다. 조직 세계에 입문한 이시카와는 보스의 명령을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린다. 그는 차츰 조직에서 소외받는 신세가 된다. 1970년대 일본영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후카사쿠 긴지다. 그는 <의리없는 전쟁>(1973)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상업영화계에서 주목받았다. <의리없는 전쟁>은 이후 시리즈물로 인기를 끌었다. 이 시리즈는 야쿠자들의 세계에 카메라를 들이댔으며 이전 야쿠자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액션장면이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다는 것. 또한 연출 스타일이 개성적이다. 후카사쿠 긴지 감독은 액션영화를 만들면서 새로운 연출 스타일을 선보였다. 기록영화 스타일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연속적인 스틸컷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예. <의리의 무덤>의 영화 도입부는 인상적이다. 몇분 동안 사진들의 연속으로만 구성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역동적인 화면이 되고 있는데 이는 1970년대 일본사회를 사실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외에 <붉은 모란-화토승부>(Red Peony Gambler-Flower Cards Match/ 1968년/ 98분)와 <붉은 모란-오류의 방문>(Red Peony Gambler-Oryu’s Visit/ 1970년/ 100분)은 모두 가코 야스시 감독작이다. <붉은 모란> 시리즈는 감독이 1970년대에 만든 의협영화 시리즈 중 가장 상업적인 시리즈물이다. 이 시리즈는 액션장면이 응축적이며 회화적인 점이 눈에 띈다. 가토 야스시 감독은 극단적인 카메라 앵글을 선호하는 감독이었으며 시대극과 의협영화 등에서 활약했다. <붉은 손수건>(Red Handkercief/ 1964년/ 99분/ 감독 마스다 도시오)은 경찰을 사직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시하라 유지로 주연작으로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다.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Colt Is My Pasport/ 1967년/ 84분/ 감독 노무라 다카시)는 전형적인 닛카쓰 영화. 짧은 제작기간에 완성된 작품임에도 영상의 속도감이나 역동성이 다른 장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살인의 권총>(Gun For Murder/ 1967년/ 89분/ 감독 하세베 야스하루)은 조직의 킬러가 등장하는 영화로 이 조직의 킬러가 보스와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다. <들고양이 록-와일드 점보>(Stray Cat Rock-Wild Jumbo/ 1970년/ 84분/ 감독 후지타 도시야)는 폭력에 중독된 젊은이들이 나오는 영화다. 현장감이 풍부한 것이 영화의 특징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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