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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3]
홍성남(평론가) 2003-08-14

기병대 삼부작의 마지막

<리오 그란데> Rio Grande, 1950년, 105분, 흑백출연 존 웨인, 모린 오하라

기병대 사령관인 커비 대령은 15년 동안이나 아내와 떨어져 지내면서 기병대에 자신의 삶을 바쳤을 정도로 헌신적인 군인이다. 어느 날 그는 아들 제프가 일반 사병으로 자신의 기지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커비의 부인마저도 아들을 군대에서 빼내기 위해 남편·아들의 기지에 나타난다. 기병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리오 그란데>는 분명 액션을 포함하는 영화다. 그러나 거친 것이 아니라 섬세한 이 웨스턴은 감정적인 갈등에 좀더 주의를 기울인다. 의무감과 가족에 대한 사랑 사이의 갈등을 영화는 꽤 사려 깊게 들여다본다.

포드 스스로 좋아하는 아방가르드 웨스턴

<웨건 마스터> Wagon Master, 1950년, 105분, 흑백

출연 벤 존슨, 해리 캐리 주니어

영화가 시작되면 몰몬교도들이 무장을 하고서 서쪽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을 본다. <웨건 마스터>는 이들 낙오자들의 공동체가 약속의 땅을 찾아가는 위험한 여행을 따라가며 일련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주는 영화다. 포드가 최소한의 예산을 가지고 대신 어떤 압력을 받지 않고 찍은 이 영화는 지극히 사적인 프로젝트라 개봉 당시 일반 관객은 물론이고 비평가들의 주목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포드 자신은 자신이 성취하기를 바랐던 것에 가장 가까이 갔으며 자신이 만든 가장 순수하고 단순한 웨스턴이라며 <웨건 마스터>를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영화로 꼽았다. 내러티브를 거의 포기하고 풍경과 인물들에 집중하는 이 영화를 두고 린제이 앤더슨은 “아방가르드 웨스턴”이라고 기술한 적도 있다.

상징적 귀향, 성숙한 러브스토리

<조용한 사나이> The Quiet Man, 1952년, 129분, 컬러

출연 존 웨인, 모린 오하라

전직 권투선수였던 숀은 시합 도중 상대선수를 죽인 게 괴로워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온다. 자기가 태어난 집을 산 숀은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아가씨 메리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결혼하려 하지만 메리의 난폭한 오빠는 육중한 장애물로 작용한다. 오래 전에 국내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조용한 사나이>는 포드에게 일종의 상징적 귀향과도 같은 영화다. 부모님의 고향 땅에서 (실외 장면만) 찍은 이 영화는 그것말고도 포드 자신의 많은 기억들이 들어가 있는 영화인 것이다. 포드 자신이 “성숙한 러브 스토리”라고 불렀고 동시에 유쾌한 코미디이기도 한 <조용한 사나이>는 가벼운 터치가 진지함과 절묘하게 만나게 하는 포드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로 포드는 자신의 네 번째 오스카 감독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소란스럽고 코믹한 우화

<태양은 밝게 빛난다> The Sun Shines Bright, 1953년, 90분, 흑백 출연 찰스 위닝거, 알린 휠란

<태양은 밝게 빛난다>는 재선에 나선 늙은 판사가 새로운 방식의 미국적 정치에 어렵게 맞선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포드 자신이 1934년에 만든 <판사 프리스트>의 리메이크인 이 영화는 소란스런 매너코미디이고 신랄한 사회적 항변이면서 기독교적 우화이기도 한 영화다. <태양은 밝게 빛난다>는 무엇보다도 포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자기 영화들 가운데 하나로 늘 꼽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이것이 계속해서 보고 싶은 자신의 영화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개봉 당시 영화는 혹평과 상업적 실패를 맛봐야 했고 결국엔 포드의 아르시영화사가 없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련된 상업영화

<모감보> Mogambo, 1953년, 116분, 컬러

출연 클라크 게이블, 에바 가드너, 그레이스 켈리

난봉꾼 기질이 다분한 사냥꾼, 세상 물정에 밝고 강인한 여자, 그리고 억눌려 있고 약간 히스테리컬한 인류학자의 아내, 이 세 인물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모감보>는 빅터 플레밍의 1932년작 <홍진>을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원작에도 출연한 적 있던 클라크 게이블 옆에다가 에바 가드너와 그레이스 켈리라는 당대의 톱스타를 기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코미디는 포드가 오로지 상업적인 이유로 착수한 몇 안 되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세련미와 매력을 잃지 않으며 연출된 이 즐길 만한 코미디는 포드에게 전작 <태양은 밝게 빛난다>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었다.

서부의 신화를 수정한 걸작

<수색자> The Searchers, 1956년, 119분, 컬러

출연 존 웨인, 제프리 헌터

<수색자>는 아마도 포드의 경력 안에서 성찰의 힘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만들어진 걸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영화는 동생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조카마저 납치한 인디언 무리를 강박적으로 찾아다니는 서부 사나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존 포드와 존 웨인이라는 두 위대한 서부 사나이들은 이 영화에서 그간 자신들이 구축했던 서부의 신화를 스스로 수정하기에 이른다. 그럼으로써 세계 영화사의 걸작 반열에 오른 이 작품은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를 비롯해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 스티븐 소더버그의 <라이미>,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 등 수많은 현대의 수작들에 영감을 불어넣어줬고 물론 앞으로도 그 역할을 계속해갈 것이다.

포드-웨인 콤비의 마지막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년, 122분, 흑백

출연 존 웨인, 제임스 스튜어트, 베라 마일즈

존 포드와 존 웨인이 함께 작업한 마지막 작품인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수색자>와 함께 영화사에 길이 남을 또 다른 수정주의 웨스턴의 걸작이다. 현재는 상원의원이자 왕년에 “(악당)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이름을 날렸던 스토다드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부의 도시 신본에 돌아온다. 그의 귀환에 궁금증을 느낀 신문기자에게 스토다드는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문명화의 과정에 폭력과 기만의 야만 행위가 스며들어 있었음을 이야기하면서 서부의 순진한 신화를 공박한다. 그러면서 포드 자신의 경력까지 스스로 비판하는 이 영화에 노인의 지혜와 시적 감수성, 비판정신이 모두 녹아들어 있음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후기 포드의 저주받은 걸작

<일곱 여인들> 7Women, 1965년, 86분, 컬러

출연 앤 밴크로프트, 플로라 롭슨

“여성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드의 바람에 따라 만들어진 <일곱 여인들>은 50년에 걸친 그의 영화감독 경력에서 마지막 장편영화로 남아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1935년의 중국을 배경으로 전염병과 또 이민족 전사들과 싸워야 하는 처지에 놓인 선교회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개봉 당시 흥행뿐 아니라 비평 쪽에서도 실패를 맛봐야했던 <일곱 여인들>은 나중에 재평가되어 흔히 포드의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는 영화다. 예컨대 포드에 대한 연구서를 쓴 태그 갤러허는 이 영화가 포드의 후기작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활력이 넘치고 대단히 창조적이며 풍부하다고 적고 있다. 홍성남 /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1]

▶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2]

▶ 서부극의 역사, 존 포드 회고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