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툼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 O.S.T
안젤리나 졸리가 또 한번 전세계를 누비며 남자들을 때려잡는 영화. 여자끼리 싸우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없다. 때려잡으며 뭔가를 찾아다닌다. 전편에서는 생명을 통제하는 희귀한 유물을 찾느라 ‘일루미나티’라는 비밀집단과 대결했고 이번에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비밀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찾아 라이스라는 사악한 생명과학자와 대결한다. ‘성배찾기’ 이야기의 롤 플레잉 게임 진행식 버전이라고나 할까.
앨런 실베스트리가 오리지널 스코어를 맡았다. 뉴욕 출신의 이 베테랑 영화음악가는 세편의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로 주요 할리우드 영화음악가의 대열에 올랐고 그 외에도 <포레스트 검프> <로맨싱 스톤> <멕시칸> 등에서 음악을 맡음으로써 명성을 쌓았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를 비롯해 <릴로와 스티치> <스튜어트 리틀> 등 애니메이션 계열의 영화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빠른 전개의 화면에 콩알처럼 콕콕 박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장기인지도 모르겠다.
<툼레이터2>에서 그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중후한 오케스트레이션에 긴장감 있는 리듬을 적절히 섞어내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액션물용 영화음악으로 기능하고 있다. <멕시칸> 같은 영화에서는 적절히 멕시코풍의 사운드를 섞더니 이번에는 중국, 아프리카 등 장소를 옮길 때마다 리듬이나 사운드의 색채에 변화를 주어 화면을 따라가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그의 음악이 딱히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면과 잘 버무려졌다는 증거이다.
<툼레이더2>에는 전편처럼 오리지널 스코어 이외의 록/테크노 계열의 음악들이 난폭함과 잔인함, 스피디함과 긴장감을 보충하고 있다. ‘영화에 쓰였거나 그로부터 영감을 받은’이란 타이틀이 붙은 O.S.T에는 주로 이런 록음악들이 들어 있다. 사실 O.S.T의 음악적인 개성으로 보면 전편만 못하다. 전편에는 게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답게 음악도 주로 테크노 계열의 디지털한 느낌을 주는 진보적 사운드가 O.S.T를 수놓았었으나 이번에는 이런 강력 액션물에 자주 등장하는 하드코어/메탈 계열에 테크노적인 요소를 섞은 록음악들이 주로 등장한다. 데이비 브러더스 같은 밴드의 음악은 약간은 구태의연한 메탈 리프나 사운드는 신선하다. 피오디, 루나틱 컴 등의 액션영화 단골손님들이 등장하여 약간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상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모비, 크리스탈 메소드 같은 테크노쪽 단골손님들의 이름도 보인다. ‘콘저 원’이라는 신예 아티스트의 곡에 시네아드 오코너가 피처링해 주고 있는 트랙은 흥미롭다. 또 전설적인 유리스믹스의 멤버였던 데이비드 스튜어트의 심플하면서도 묘한 느낌의 댄스 넘버도 귀에 들어온다.
요즘 액션영화들은 지난번에 소개했던 <미녀 삼총사>의 TV채널 돌리기 방식과 <툼레이더2>의 게임전개 방식이 대세를 장악해가고 있다. <툼레이더2>는 꼭 게임 스테이지 넘어가는 식으로 전개된다. 첫째 스테이지는 그리스, 둘째 스테이지는 중국, 셋째 스테이지는 킬리만자로에서 벌어지는데 스테이지를 넘길 때마다 주인공은 롤 플레잉 게임에서처럼 비밀열쇠 비슷한 것을 찾아내며 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앨런 실베스트리의 음악이, PC방에서 지겹도록 반복되어 들리는 <스타 크래프트>의 음악 비슷하게 들린다.
성기완/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