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보기 전에 어머니를 먼저 뵈었다. 56년 <단종애사>부터 2001년 <친구>에 이르기까지 무려 47년간 영화 의상에 종사해왔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의상 할머니’ 이해윤씨가, <청풍명월> 의상감독 권유진(47)씨의 어머니다. 한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던 그녀의 고집스러움과 완벽주의가 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진 듯했다. 권 감독을 마주 대하고 앉아 2대에 걸친 의상철학을 듣고 있으려니 그 아찔한 기시감은 확실해졌다. 역사적 사실인 ‘인조반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청풍명월>에 등장하는 공간과 의상은 서인시대의 개막을 알리던 조선 중기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어차피 영화는 하나의 그럴듯한 거짓말이잖아. 의상 역시 정확히 사실에 근거하여 만들기도 해야겠지만, 감독의 상상력과 의상장이의 창조력이 만나 전혀 새로운 복장을 선보일 수 있는 거겠지. 고증이 필요하고, 또 고증을 받아야만 하는 영화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잖아.”(이해윤, 2001. 2. 19 <영화인회고록-이해윤 편1>에서) 그랬던가. 영화 속 의상은 다큐적 고증물이 아닌 별난 창작물이라는 생각은 그의 아들에게 유전되었던 것일까.
77년작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이순신 장군의 갑옷은, 일단 참고할 견본이 없다는 사실 자체로 의상감독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당시 의상감독이었던 이해윤씨는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을 참조해 모양을 흉내내었으며, 입체감이 잘 살지 않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프레스 공장을 찾아가 갑옷에 달 쇠미늘을 한장 한장 두드려 볼록한 모양이 나오게 가공했다. 그것이 정통 사극에 등장하는 최초의 ‘창작’ 갑옷이었다. 연이은 사극 작품에서 그녀는 볼록한 미늘 위해 태극문양을 새겨 넣어 세련미를 더했다. 주위에서는 고증을 무시한다며 비난했지만, 그렇게 발전된 갑옷의 형태는 <청풍명월>에 이르러 완전히 변모된 4세대 갑옷으로 훌쩍 진화한다. 끝이 숟가락마냥 둥글게 말리고, 암울한 청동빛을 띠는 쇠미늘에서는 금세라도 반정군으로 변한 동료들에게 속절없이 당한 별군들의 피가 떨어질 듯하다. 어깨에 덧씌운 케이프는 검도를 할 때 입는 의상과 닮아서 왜색을 풍기는 듯하고, 허리에 매는 복대 또한 중국의 전투복과 비슷해 동양 삼국의 느낌이 골고루 배어나온다. 전투복의 색상이 낮은 채도로써 반정시대의 억압을 나타낸다면, 청풍명월군의 연습복은 신라군의 선을 차용했고, 양회색을 주어 그들이 꿈꾸던 이상향을 짐작게 했다.
지환 역의 최민수의 의상을 제작할 때 수도 없는 샘플이 버려졌다. 산중에 틀어박혀 복수심을 양식으로 살아가는 지환에게 화려한 의상이 필요할까마는, 그래도 권 감독은 최민수라는 배우가 가진 강렬한 이미지에 보탬이 되고자 각과 선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의상을 보고 최민수가 그랬다. “감독님, 이 옷들은 정말 최민수가 입을 만한 옷들이네요. 하지만 전 지환이거든요.” 마지막에야 낙점된 의상을 최민수는 두고두고 탐을 냈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의사표현까지 할 정도로. 권유진 감독은 현재 <낭만자객>에 참여 중이다.글 심지현·사진 오계옥
권유진 | 1957년생·의상디자이너 어머니 밑에서 자연스레 의상의 길로 들어섬. <내시> <연산군> <연산일기> <씨받이>에서부터 <마리아와 여인숙> <세븐틴> <창> <나비> <청풍명월>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독창적인 선과 색을 보여줌. 현재 <낭만자객> 의상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