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반부, 철민(정우성)과 진묵(김태욱)의 유치장 싸움신(격투신이라고 차마 말 못하겠다)은 진흙탕에서 구르는 두 마리의 똥개를 연상시킨다. 그 처절한 육탄전은 잘 훈련된 투견의 그것과는 질이 다르다. 무작정 달려들어 일단 물고 놓지 않는 똥개들처럼, 철민과 진묵의 몸뚱어리 사이에는 이미 수(守)와 공(攻)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다. 칼과 총이 아닌, 주먹끼리의 싸움은, 몸뚱어리의 싸움은 좁은 틈바구니 사이에서 적과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시작되는 전쟁이다. 나의 주먹이 상대의 허점을 노리고 달려들 때, 나의 허점 역시 상대에게 고스란히 열려버리는 것이 몸뚱어리의 싸움이다. 주먹으로는 상대를 겨눌 수 없다. 상대를 향해 다가갈 때의 조심스런 진법 따위도 그래서 없다. 치고 빠지고의 간단한 수식조차 성립이 안 되는 철민과 진묵의 육탄전에서 둘은 말 그대로 묵사발로 변해간다. 흘러내리는 피가 공기 중에 흩뿌려지듯 산화하지 못하고 바닥에 시뻘건 웅덩이를 만들어갈 때, 그때 철민이 진묵을 문다.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똥개` 철민이 진묵을 물었을 때, 싸움은 비로소 끝이 난다. 그 풍경에서 누가 승자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지경이다. 그냥 야생의 풍경이라고 해두는 게 낫다.
스필버그의 세계가 갇힌 채 진화하는 것이라면 곽경택의 시공간은 밀실에서 재생된다. 문명의 이기가 깜빡 잊고 지나간 듯한 도시 밀양의 전경과 철민의 삶은 그래서 판타지라는 오해를 쓰기 쉽다. 애초에 액션장면에 대한 빽빽한 지문이 있긴 했지만, 무술감독 신재명(35)에겐 미적지근했다. <비트>의 정우성을 조금 망가뜨리면 나올 법한 액션장면을 들어내고, 신 감독은 똥개끼리의 싸움을 대신 집어넣었다. 곽 감독이 옳거니 동조를 해주자, 남은 관건은 배우들 똥개 만들기. 치밀하게 계산된 액션이야, 똥개들의 싸움이라고 다를 바 없지만, 누가 보더라도 어설프게 되는 대로 치는 액션으로 보여야 했다.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아마추어인 배우들이 성할 리 만무했다. 진묵 역의 김태욱은 몸이 약한 편이라 훈련 도중 앓아눕기도 했다. 하루는 정우성의 매니저가 신 감독에게 그랬다. “너무 망가지는 거 아녜요? 액션신이면 좀 멋있게 나와야 하는데, 안 그런가?” 의심의 눈길을 보내긴 정우성도 마찬가지였다. 한달 정도 지나고, 완성되어지는 액션신을 보며 나중엔 더 욕심내며 달려들긴 했지만. 정우성이 매니저를 이렇게 타일렀단다. “좀 있어봐. 이 감독 뭔가 있는 거 같아.”
신재명은 스스로 가진 액션의 장르가 너무 다양하다. 필모그라피를 훑다보면 공통점을 찾기가 희박할 정도다. 매번 할 때마다 다른 액션을 보여주고자 하는 신 감독의 강박증이 차기작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두고볼 일이다.글 심지현·사진 이혜정
프로필 1969년생·1990년 스턴트 배우로 영화인생 시작·<반달가면> <홍길동> 등 어린이영화에 출연을 시작으로 95년까지 다작 출연·쿵후, 격투기, 권투 등으로 몸을 단련하며 팀을 꾸리던 중 TV물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로 무술감독 데뷔, 이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친구> <달마야 놀자> <해적, 디스코왕 되다> <챔피언> <품행제로> <일단 뛰어> <오! 해피데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똥개> 등의 무술감독·현재 <말죽거리 잔혹사>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액션작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