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멜로·패션 모든게 기발했지”
<동심초> <로맨스 빠빠>에서 50년대 후반 흥행코드를 읽다
<동심초> 1959년, 제작 박운삼, 제작사 한국영배사, 원작 조남사, 감독 신상옥, 출연 최은희, 엄앵란, 김진규, 주증녀, 김석훈, 김동원, 한은진, 도금봉, 김승호, 이민, 주선태, 서월영, 임양, 정연자, 최은연.
<로맨스 빠빠> 1960년, 제작·감독 신상옥, 제작사 신필림, 원작 김희창, 출연 최은희, 김진규, 신성일, 김승호, 주증녀.
1950년대 후반의 자작을 말하는 신상옥 감독의 회고 속에서는 라디오 드라마와 올스타 캐스팅, ‘노라노’ 패션과 멜로드라마와 같은 흥행의 코드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이것들은 곧 ‘멜로감독’, ‘흥행감독’이라는 그간의 평가를 확언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세간의 잣대를 이미 잘 알고 있으며, 한 시절의 노작(勞作)에 대해 ‘돈벌이’라고 심상하게 말하는 신 감독의 냉정함, 자기 긍정의 힘은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싶은 안도의 한순간을 흔들어놓는다.
<동심초>라는 것은, 유일하게 내가 제작한 게 아니고 박운삼이라는 제작자가 돈을 가져와서 했고, 그래서 아직까지 판권이 나한테 있지 않다. 또 그때 원작이 라디오 드라마로 히트했기 때문에 그 여세를 타고 히트한 작품이다. 이건 순전히 최 여사를 뽑으라고 나한테 온 거지. 그때만 해도 미망인 역할은 최 여사(최은희)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가지고 그 역할을 최 여사한테 가져갈 때 할 수 없이 내가 감독을 했다. 이 여사(최은희가 연기한 전쟁 미망인)라는 역할은 누구든지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렇게 ‘이메진’을 했으니까. 이 작품이 ‘메로드라마’의 시작이다.
<동심초> 히트한 것이 어떤 영향을 줬는고 하니 고 다음에 <청년 이승만>(<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이라는 작품이 나온다. 임화수씨가 이병일 감독을 데리고 <청년 이승만>을 같이 하다가 결국 되지 않아서 죽 쑤고 앉았을 때다. 그때 청와대에 있는 곽 경호관이라는 사람이 내 영화를 쭉 봐왔던 모양 같애. 신상옥이가 언제나 원작보다 잘 찍는다 해가지고, 그 사람이 주축이 돼서 별안간에 임화수한테 끌려갔다. <자매의 화원> 찍다가 잽혀가가지고, 남이 찍던 도중에 다 중단시키고 새로 한 것이 <청년 이승만>이다. 이 영화는 처음 안양촬영소를 이용하고 찍은 작품이다. 물론 그 전에 홍찬씨가 <생명>이니 뭐니 자기 영화를 찍긴 했지마는 외부 사람이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대작을 찍기는 그때가 처음이다.
그 안에 거리도 짓고, 감옥도 짓고, 독립문까지 지어서 찍었으니까. 먼저도 얘기했지마는 그 양반(이승만)은 한국영화가 시시한 것은 기계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했거든? 그래서 자동현상기니, 미첼카메라니, 웨스트렉스 녹음기니 다 들여왔잖아. 그러나 요는 영화 만드는 건 기계 아니고, 머리다 이거지. 그러니까 기계 들여오고도 아무것도 못했다. 이필우(일제시대부터 활동한 촬영 및 녹음기사) 씨네 뭐네 기사들이 들어갔다가 <생명> 같은 거 녹음 실패하고 나오고 말았다. 안양촬영소 녹음기는 덴시티 타입(농도형)이 돼가지고 녹음이나 현상이 힘들다. 에리아 타입(면적형)은 좀 쉬운데. 덴시티 메타까지 있었는데 그거 할 만한 때가 못됐지. 시기적으로 빨랐지. 내가 알고 있는 일제시대 때 사람들이 해방 뒤에 기술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도태되고 시세가 없어진 것은 그런 식으로 감각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하간에 안양촬영소는 이승만이한테 잘 보여가지고 지은 것인데, 영화 해서는 돈을 못 벌었고 시설 빌려준다고 해도 그걸로는 수지가 안 맞았다. 산업은행에서 밤낮 이자는 나오고, 결국 손 들 수밖에 없었지. 손 들고 나서 십년 만에 내가 인수했다.
내 작품 가운데 <춘희>가 안양촬영소를 빌려서 찍은 것이다. 작품이 없어졌기 때문에 만들고 난 이후로는 나도 보지 못했다. 이 영화는, 돈벌이지. 그때 최 여사 한참 인기있을 때니까 돈벌이할라고 찍었다고 봐야지. 최 여사는 한복밖에 잘 안 입었었는데 노라노가 ‘데자인’을 봐가지고 패션을 괜찮게 했다. 안드레(앙드레 김)는 그때 배우하갔다고 영화사 들어와 있을 때니까 패션은 노라노밖에 없었다. 모자도 쓰고, 그때로서는 상당히 기발하게 했다. ‘메로드라마’니까 하이튼 크게 히트했다.
<로맨스 빠빠>는 그때로 치면 올스타 캐스팅이었다. 남궁원이 사위로 나오고, 신성일이 막내아들로 나오고 엄앵란이, 도금봉이, 김진규, 최은희, 김승호, 주증녀, 다지 뭐. 거기다가 또 주선태. 지금처럼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학대받는 그런 영화니까 중년층의 호응을 많이 받았다. 대담 신상옥·김소희·이기림정리 이기림/ 영화사 연구자 marie3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