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한 농촌 마을. 이남(유현두) 또한 자동차 정비공장에 취직해 곧 서울로 떠나야 하는 처지다. 그런 그에게 남모를 걱정이 하나 있다. 죽마고우로 서른 넘도록 한 마을에서 살아온 응수(박규종)를 누가 돌봐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편,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을 보살펴준 이남이 곧 자신의 곁을 떠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응수는 토라진다. 이남이 걸어오는 살가운 장난을 외면하고, 혹여 길을 잃을까봐 이남이 만들어준 이름표도 짓밟아버린다.
■ Review여기, 그들만의 삶을 누리는 두 남자가 있다. 시각장애인인 응수와 그를 극진히 살피는 이남. 이들은 한몸처럼 붙어다니며 마을 어귀에서 빈둥거린다. 주위 사람들이 이들을 마땅히 여길 리 없다. “저놈들… 살다살다 모르겄어.” 담배를 피워 물며 카메라를 향해 내뱉는 한 노인의 푸념처럼,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뿌리를 내리며 삶을 영위한다. 그게 벌써 30년이 넘었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여름날, 이들의 나른한 공생에도 균열이 발생한다. 서울에 일자리를 얻은 이남이 응수 곁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영화는 뒤뚱거리는 두 남자의 ‘홀로서기’를 번갈아 병치시키면서 긴장을 취한다. 미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에 실을 단 신화 속 인물처럼 응수는 자신의 몸에 빨랫줄을 묶고서 나들이를 행한다. 이남 또한 새 직장인 자동차 정비소에서 나이어린 선배에게 굽실거리며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두 남자의 오디세이는 이내 막을 내린다. 이들은 첫걸음을 뗀 아이처럼 얼마 달리지도 못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남과 함께 거닐던 물가에서 응수는 배회하다 봉변을 당하기 일쑤고, 응수가 걱정되어 잠시 고향으로 돌아오느라 자리를 비운 이남은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다. 오솔길에서의 어색한 재회. 두 사람은 스쳐 지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자신의 또 다른 반쪽의 존재를 절감하고 이내 받아들인다. 직접적으로 발언하지 않지만 퀴어영화의 향내가 감지된다.
“보이지 않아도, 발자국 소리로도 알 수 있는 우정”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 감독의 연출의도. 매끄러운 드라마 트루기를 갖추고 있진 않지만, 작품은 감독의 진심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매 장면을 가름하는 인물들의 생뚱맞은 대사, 방관자 같은 마을 사람들의 갑작스런 개입 등도 영화의 결을 풍성하게 만드는 장치들이다. 불협화음이라 할지라도 서로에겐 더없는 찬가임을 절감하게 해주는 엔딩 또한 인상적이다. 제56회 칸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출품되어 상영됐으며, “대상에 지나치게 다가가지 않고 자기 감정에 빠지지 않았다”는 심사평과 함께 제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전’ 멜로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