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거장, 지금은 ‘과대 평가된 감독’의 하나로 손꼽히는 앨런 파커. 아이들의 갱스터 <벅시 말론>, 올리버 스톤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를 영상화한 <더 월>,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버디>까지 앨런 파커의 초기 작품들은 찬사 일변도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범작과 졸작의 연속이다. 근작인 <데이비드 게일> 역시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다.
<페임>은 앨런 파커의 영화세계를 대표하는 걸작은 아니지만, 당시 대중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던 작품이다. 제작연도인 80년이 말해주듯, <페임>은 번들거리던 80년대 대중문화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완벽주의를 지향하던 록음악이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의 팝 뮤직에 영광을 넘겨주게 되고, 영화 역시 뉴시네마의 종언과 함께 블록버스터가 장악하게 되는 시절이었다. 그 시절 디스코텍의 조명처럼, 세상은 가볍고 화려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페임>의 청춘들은 팝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하여 달리고 또 달린다.
<페임>은 뉴욕 예술학교의 오디션 현장으로 시작한다. 누구는 거리의 솜씨로 ‘관능적’인 춤을 선보이고, 누구는 거짓말로 자신을 연기하고, 누구는 신시사이저 음악으로 클래식에 익숙한 음악교수를 괴롭힌다. 앨런 파커는 다큐멘터리와 CF를 뒤섞은 듯한 터치로 자칭 예술가들의 광란을 흥겹게 담아낸다. 1학년, 2학년 조금씩 성장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작은 에피소드로 엮어내며 경쾌하게 달려간다. <페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면은 80년대 명곡의 하나인 아이린 카라의 <페임>이 울려퍼지면서 예술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춤을 추는 광경이다. 힘이 넘치는 즐거운 장면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인상적인 곳이 있다. 예술학교에 입학한 도리스(모린 티피)가 첫 번째 날 점심을 먹으러 들른 학생식당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누구는 홀로 색소폰을 불고 있고, 어떤 남녀는 껴안고 춤을 추고 있고, 몇몇이 어울려 연기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신입생인 부르노 마텔리가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자 즉석에서 거대한 즉흥 잼이 시작된다. 저마다 악기를 불어대고, 춤을 추고, 마임을 한다. 그 순간 학생식당은 거대한 축제의 장이 된다. 그들 모두가 환상적인 축제의 주인공이 된다.
도리스는 그 축제를 지켜보다가는, 슬그머니 물러나 문을 열고 나온다. 연기지망생이지만 얼굴도 평범하고, 카리스마도 없고, 천재적인 재능도 없는 도리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나와보니 계단에는 몽고메리가 앉아 있다. 유명 배우의 아들이지만, 평범한 얼굴에 내성적인 몽고메리는 말한다.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천재와 사이코, 혹은 둘 다인 예술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평범’한 도리스와 몽고메리는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러나 승부는 외면적인 끼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명성’이고, ‘세상을 흔들 그날을 기다리며’ 수많은 예술가 지망생들이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교수의 말처럼 ‘100명의 배우가 있으면 1명만이 연기로 먹고살고, 일부는 광고로 먹고살고, 대다수는 웨이터나 택시운전 등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현실이다. 도리스가 흠모했던 선배가 있다.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고, 재능이 철철 넘쳤던 선배. 졸업을 앞두고는 LA에서 영화를 찍기로 했다며 도리스에게 사인도 해주었다. 하지만 상급생이 된 도리스가 친구들과 함께 들른 레스토랑에 선배가 있었다. LA에서는 일이 안 풀렸고, 단편을 찍었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고, 열심히 오디션을 보는 중이라는 선배는 그날의 추천요리를 소개해준다. 도리스와 친구들은 이견없이 그것을 택한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때로는 속임수에 넘어가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기도 하고, 코미디 클럽에서 대중의 냉대를 받기도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선다. 그들은 아직 학생이고, 그들에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 도리스가 가장 치욕적이고, 슬픈 감정을 “기억했다가 연기에 써먹어야지”라고 되뇌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들은 화려한 미래를 바라보며, 칙칙한 현재를 맹렬하게 살아간다. 그 혼돈의 순간, 온갖 욕망과 과시욕 그리고 절망과 분노로 가득 찬 찰나는 <페임>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앨런 파커의 재능은 바로 그것이었다. 혼돈과 충돌과 열정의 순간, 그 에너지를 잡아내는 능력. 초기작들에는 그런 순간이 충만했지만, 요즘 앨런 파커의 영화에는 그런 순간이 보이지 않는다. 그 황홀한 혼돈을 환대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Fame, 1980년감독 알란 파커주연 아이린 카라, 리 커레리, 로라 딘 화면포맷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 오디오 돌비디지털 5.1 & 2.0 모노 출시사 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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