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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여자친구, <브루스 올마이티>의 제니퍼 애니스톤
문석 2003-07-09

제니퍼 애니스톤이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2003 100명의 유명인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지난해 그녀의 수입은 고작(?) 3500만달러로 이 분야에선 23위일 뿐이다. 게다가 인터넷 조회 수는 20위, 언론보도 40위, TV와 라디오 노출에선 26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영광스런 자리를 내준 이유에 대해 <포브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줄리아 로버츠보다 대중적이다. 특히 지난 한해 다른 어는 누구보다 그녀를 커버스토리에 많이 다룬 잡지 편집장들에게는.”

남자들 입에 침이 흥건히 고이게 하는 팔등신도, 조각상 같이 잘 다듬어진 얼굴의 소유자도 아닌 애니스톤이 미국 주요잡지 표지에 가장 많이(<포브스>에 따르면 13.5회) 등장한 데는 남편인 브래드 피트와의 사생활이나 패션리더로서의 삶에 대한 궁금증 탓도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프렌즈>가 가장 큰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이 여섯 친구들의 소우주에서 애니스톤이 맡은 캐릭터 레이첼은 숱한 연애와 결혼 끝에 미혼모로서의 삶을 선택한, 거의 유일하게 성숙하며, 지적이고 따뜻한 캐릭터다. 물론 애니스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징징대도 귀엽기만한 자태, 다른 이의 허물을 끌어안을 줄 아는 부드러운 이미지가 아니었다면 레이첼과 <프렌즈>는 그토록 사랑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애니스톤이 지난해 에미상과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이 시트콤에서 갈수록 커져가는 그녀의 비중을 인정한 결과일 게다. 그녀의 회당 출연료 125만달러가 ‘폭리’만은 아닌 것이다.

이제 <프렌즈>는 마라톤으로 치면 이제 400m 트랙만을 남겨둔 형국이다. 얼마 뒤 방송될 시즌 10회가 끝나면 애니스톤은 맨해튼의 아파트를 나와 유쾌한 녀석들과 헤어질 것이다. 그뒤 그녀가 향할 곳은? <브루스 올마이티>는 그녀가 정착할 새 보금자리가 영화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TV리포터 브루스 놀란(짐 캐리)의 여자친구 그레이스. 오로지 성공만을 향해 치닫는 놀란과 달리, 그레이스는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것은 작은 사랑과 평범한 행복이라 생각하는 유치원 보모다. 놀란이 1주일 동안 신의 능력을 행사하며 권세를 누릴 때도 그레이스는 남자친구의 행복을 위해 침대에서 기도를 행하는 ‘참한’ 여성이다. 물론 그녀는 영화를 끌어가는 짐 캐리 뒤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정도의 보조 역할을 했을 뿐이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보여줬다. 너무 사랑스럽고 따스해 결국엔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평범한 남성들의 현실적 이상형 말이다.

또 한 가지, <브루스 올마이티>를 통해 애니스톤이 입증한 것은 “너는 절대로 영화스타는 되지 못할 것”이라는 10년 전 매니저의 이야기가 틀렸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애니스톤은 <그녀를 위하여> <내가 사랑한 사람> <뛰는 백수 나는 건달> 같은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녀는 남자주인공의 좋은 여자친구이거나 참을성 있는 약혼녀, 또는 신의있는 파트너였을 뿐,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는 실패했다. 얼핏 <브루스 올마이티>의 그녀 또한 이전 영화의 이미지를 반복하는 듯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짐 캐리의 코미디도 그녀의 차분한 연기 덕분에 안정감을 얻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브루스 올마이티>는 애니스톤에게 전환점을 마련해준 <굿 걸>(2002)의 연장선 위에 있다. 텍사스 깡촌에서 건조한 일상을 메워가야 하는 외로운 여인 저스틴 역을 훌륭히 수행한 그녀에게 평단은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스스로는 “코미디 외의 작품을 잘할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지만, 이 작품은 그녀가 관객의 감정을 절절히 뽑아낼 수 있는 ‘스크린용 배우’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제 정상의 위치에 섰지만, 그녀의 실제 삶은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 평범하고 편안한 이미지와 일맥상통한다. 피트와 결혼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강아지만 데리고 LA 인근의 협곡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그녀는 할리우드에 살면서 스타들이 보이는 거만한 행태가 싫다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만약 내가 그런 꼴을 보이면 매우 세게 때려줘” 라고. 그녀가 ‘뭇여성의 연인’ 브래드 피트와 2000년 이후 지금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리라. 애니스톤의 범상함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이야말로 그녀에 대한 피트의 살가운 애정을, 그리고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오랫동안 지속시키는 가장 큰 무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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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SYG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