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함께 만든 20년 친구 김지운 감독 - 이병우 음악감독의 대화
소주 마시며 밤새워 시시콜콜한 팝송 이야기부터 예술이 뭔지, 인생이 뭔지 붙잡고 고민을 나누던 두 친구가 있었다. 영화와 음악을 꿈꾸던 그 둘은 “내가 영화 데뷔하게 되면 니가 꼭 음악 맡아라”는 말을 다짐처럼 했다.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 사람은 10여년 백수 생활의 공력으로 사람들을 그 이름만으로 휘어잡는 영화감독이 됐다.
또 한 사람은 〈들국화〉 1집에 들어 있던 노래 ‘오후만 있던 일요일’로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천재적인 세션맨으로, 소중한 젊은 추억을 들려주던 그룹 ‘어떤 날’의 멤버로 변신하고 빈과 미국 유학을 거쳐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약속처럼 데뷔작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김지운 감독은 〈쓰리〉의 단편 〈메모리즈〉에 이어 〈장화, 홍련〉에서 두번째로 ‘평생 친구’ 이병우에게 음악을 부탁했다. △김지운 감독(왼쪽), 이병우 음악감독〈장화, 홍련〉의 흥행 성공도 기쁜 일이지만, 이들에겐 각자가 꿈을 이룬 데 더해 함께 한길에서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더 벅차 보였다. 지난 3일 삼청동 골목의 한 카페에서 둘이 만나 과거와 현재를 털어놓았다.
<장화, 홍련>
〈장화, 홍련〉은 현재 전국 28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계의 인기장르에 ‘공포영화’를 새로 추가시켰다. 기타, 피아노, 스트링앙상블 등에 실린 이병우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감성적 공포’라는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 흥행에 일조했음은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병우(이하 이): 원래 김 감독이 그런 말 잘 안하는 사람인데 이번엔 작업 끝나고 “고맙다” 하더라고요. 얘가 취향이 동성으로 변했나.(웃음)
김지운(이하 김): 진짜 그런 말 못하는데, 요번엔 스태프들이 정말 고마웠어요. 편집이고 사운드고, 시간이 촉박하고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 만족스럽게 내줘서. 하루 갈 때마다 좋은 음악이 탁탁 나와 기분이 좋더라고.
이: 사실 영화음악은 방향 잡는 게 문제예요. 가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 다른 얘기를 하는 감독이 있으면 속으론 ‘헉’ 하는데…. 김 감독의 생각은 뭔지 아니까. 김 감독이 예전에도 그런 말을 했는데, 세상엔 실생활을 그대로 옮기는 영화가 있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로 또다른 즐거움을 주는 영화가 있는데 자기는 후자의, ‘영화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음악도 소위 공포영화라고 했을 때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가자는 거였죠. 시사회 볼 때 재미있더라고. 생각 안 한 데서 음악이 나오는데, 흥행에 참패했더라면 음악감독이 책임져야 하지 않았을까.
김: 어쨌든 OST 낼 거면 빨리 내줘. 영화사에 “OST 발매 않는 영화사 봄 각성하라”는 식의 메일이 빗발친다니까.
이: 어…, 내가 워낙 게을러서….
첫 만남, 그리고 19년
그들은 20대 청춘의 들머리에 만났다. “너랑 얘기가 되게 잘 통할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둘이 ‘소개팅’처럼 만난 것이 처음. 84년 설악산 여행은 지금도 가끔씩 떠올리는 추억이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밤새 예술이 뭔지 붙들고 얘기하면서 둘 사이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백수생활을 하던 김 감독이 오스트리아 빈에 가 있는 이 감독에게 편지를 썼다 하면 한번에 4~5장은 보통. 이 감독은 그 편지를 받으며 “너 딴 거 하지 말고 시나리오부터 써라”고 길을 ‘인도’해줬다.
김: 사실 이 감독은 내게 자극을 준 친구예요. 어린 나이에 최고 음악가들이랑 작업한 것도 놀랍고, 그러다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빈에 가자마자 빈 시립·국립음악대를 동시에 합격하고. 신화 같은 얘기가 많은데, 이 감독은 한국에서 ‘사부’가 없었거든요. 그저 판 하나 올려놓고 기타 쳤던 거죠. 그걸 알고 그쪽 선생이 너무 놀랐다는 거예요. 내가 오래 한 백수의 시간만큼이나 외국에서 공부한 것도 놀라웠고. 솔직히 이 감독 보며 초조감도 느꼈어요. 그래도 그걸 보고 아무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한 게 아니라, 그 힘을 받아 내가 오래 백수생활을 버텼던 것 같아요.
이: 내가 유학가 있는 동안에 김 감독이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했어요. 그 영화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워낙 내 기대치가 크니까. 그리고 내가 생각한 대로 영화 만들면 다음 작품 만들기 힘들 정도로 흥행이 안 될 수도 있고. ‘이코’라는 게임이 있거든요. 난 김 감독이 영화 만들면 꼭 그런 영화일 것 같았어요. 공주가 나오는 건데….(웃음) 뿔이 달려 태어나 성에 갇힌 주인공이 그 성 위에 갇혀 있는 공주를 구해 탈출하는 건데, 장면은 스펙터클한데도 굉장히 고독해요. 오래된 성에 밖에 나가면 한없는 바닷가가 펼쳐지고. 근데 김 감독 몇몇 작품을 보면 순발력이 뛰어난 감독이란 생각부터 들더라고, 어렸을 때는 좀더 진지한 상황이 많았던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알겠지
김: 모르겠다. (웃음) 나로서도 〈장화, 홍련〉 끝내며 어쨌든 코미디 감독 닉네임 떨쳐낸 게 속시원하더라고요. 나는 뭔가 다른 걸 시도한 것 같은데 사람들은 “요번에도 웃겨요” 하고 물으니까. 하긴 대중음악 하다가 클래식으로, 또다시 넘나드는 이 감독 변화가 더 놀랍죠.
이: 사실 〈장화, 홍련〉 하면서 혹시 친구라서 맡긴 것 아니냐는 소리 들을까 약간 걱정은 됐어요. 하지만 김 감독도 그런 이유는 아니었을 거고. 앞으로도 꼭 같이 하자 그런 것 없어요. 다른 음악세계가 적절하다면 김 감독도 다른 사람을 찾을 거고, 나도 적극 추천해줄 거고. 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