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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태원 스크린쿼터대책위 대표
2003-07-03

“스크린쿼터 줄이면 국제사회 비웃음 살 것”

"스크린쿼터가 조금이라도 축소될 기미가 보인다면 미국은 자국 영화 진출에 걸림돌이 될만한 것을 하나씩 풀라고 집요하게 요구할 겁니다. 극장업자도 직접 들어와 시장을 잠식하고 자기네 영화만 상영하려고 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관객의 선택권은 보장받지 못합니다."

2일 출범한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원회'에서 임권택 감독과 공동대표로 추대된 이태원(64) 태흥영화사 대표는 "관객의 선택권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세계 영화업계의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우리 영화의 관객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다보니 이제는 풀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영화인들은 벤츠를 타고 다니면서 스크린쿼터 풀자고 하니 애국심을 들고나온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듣고 있습니다. 맞는 말씀이고 우리도 반성할 대목이 있지만 미국 영화가 제한없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1년에 기껏 50편 만드는 나라가 수천 편의 영화와 어떻게 경쟁을 합니까. 관객의 선택권을 위해 스크린쿼터가 필요한 겁니다."

이 대표는 미국 영화산업의 파괴력을 강조하며 멕시코와 대만 등의 사례를 들었다.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매년 쿼터일수를 5%씩 단계적으로 감축, 98년에 완전 폐지에 이른 멕시코는 90년 80편에 달하던 자국영화 편수가 98년 10편으로 감소했다. 대만도 87년 외화 쿼터를 폐지한 후 35%를 유지하던 자국영화 점유율이 98년 5%대로 추락했다.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대만의 세계적인 감독 에드워드 양을 만났는데 저를 붙잡고 울더군요. 외국에서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는데 정작 국내에 스태프가 없어 찍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도 그런 지경에 빠지면 우리의 역사와 정서가 담겨 있고 우리나라 배우가 우리말로 연기하는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안 봐도 상관없다면 제가 더 할 말이 없지요."

영화인들은 일부 경제관료가 지난 3월부터 "한미투자협정을 위해 스크린쿼터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할 때만 해도 스크린쿼터 유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참여정부와 이창동 장관의 문화관광부를 믿고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곳곳에서 주장과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영화인까지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모습이 바람직하게 비치지 않을 것이라는 여건도 고려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영화인들의 의지를 한곳으로 모으고 체계적으로 국민 홍보와 대응책 마련에 나서기 위해 범영화인이 참여하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해외의 수많은 문화관련 단체들이 스크린쿼터 지키기 운동을 지지하고 축소 움직임에 항의하는 서신을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와 청와대 등에 팩시밀리와 e-메일 등으로 보내오고 있다"고 소개하며 "문화 선진국들이 스크린쿼터를 성공사례로 꼽고 있는데 이를 줄인다면 국제사회의 비웃음을 살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이 대표는 74년 의정부중앙극장을 인수해 영화계에 뛰어든 이후 임권택 감독과 손을 잡고 <장군의 아들>, <서편제>, <축제>, <춘향뎐> 등을 제작했으며 지난해 <취화선>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으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