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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촬영현장

끝 없는 욕망, 마르지 않는 피

‘궁금한 것,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많은’ 여고생들이 남몰래 여우계단에서 소망을 빈다. 그런데 여우계단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치명적인 대가를 요구한다. 뒤틀린 소원이 교차되면서 일으키는 죽음과 공포.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이 서울 용산구 옛 수도여고에서 막바지 촬영에 몰두하고 있다. 폐허의 느낌을 담고 있는 건물들이 은근히 영화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모든 아이들의 놀림감인 미술반 뚱보 혜주(조안)가 학교 얼짱(얼굴 짱)인 소희(박한별)를 찾아가 체육복을 빌리는 장면이다. <명동 잔혹사>에서 <몽정기>까지 150편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지닌 원로급의 서정민 촬영감독이 윤재연 신예 여성감독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면서 촬영은 차분하고 순조롭게 진행된다. 감독은 어린 여배우들에게 연기를 디테일하게 지도한다. 마치 언니가 동생들 달래듯이.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는 예술고등학교에서 펼쳐진다. 미를 추구하는 그곳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는 끔찍한 공포가 깃들어 있다. 상상해보자. 다리없는 아이가 무용실에서 발레를 하고, 토슈즈의 발자국마다 핏빛이 배어나온다면…. 그런데 진짜 무서움은 여고생들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에서 생겨난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의 원혼이 복수를 펼치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여우계단에서 소원을 빈 4명의 아이들을 통해 끔찍한 공포가 전염된다. 발레전공 2학년 진성(송지효)은 모차르트를 이길 수 없는 살리에리다. 소희와 더할 나위 없는 단짝이지만 그의 타고난 재능에는 이길 도리가 없다. 발레 콩쿠르에 나갈 교내 대표를 뽑는다는 소식에 홀린 듯 여우계단으로 향한다. “여우야, 여우야, 내가 서울 발레 콩쿠르에 나가게 해줘.” 진성이가 소원을 빈다. 소희와 친해지고 싶은 혜주는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큰 망신을 당하고 여우계단에 오른다. “여우야, 여우야, 살이 빠지게 해줘.” 혜주가 소원을 빈다. 다친 소희를 대신해서 콩쿠르에 출전한 진성은 1등으로 입상하고, 뚱뚱했던 혜주는 점점 야위어간다. 그런데 병원에 있는 줄만 알았던 소희가 진성이의 기숙사로 찾아왔다. 하지만 소희는 이미 죽은 뒤다.

6월24일 크랭크업한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은 7월19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뒤 8월1일 개봉할 예정이다.

윤재연 감독 인터뷰

같은 곳을 본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의 제작에는 유독 여성들이 많다. 네명의 시나리오 작가, 네명의 주연배우, 그리고 감독. 윤재연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하고 이 작품으로 장편 데뷔한다.

제작진의 중심이 여성이다. 작가도, 배우도, 다 어린 여성들인데 남성이 나오는 영화에서 남성에게 나오는 힘이 있듯이 여자들에게서만 나오는 미묘한 힘이 있다. 영화 속에서 그건 디테일로 나타나지 않을까.

원로급 촬영감독과 일하는 건 어떤가. 일단 내가 신인이니까 그분의 노하우가 힘이 되는 쪽으로 작용하지 않나 싶다. 예컨대 시점숏이 어떤 느낌을 가지는가 등의 영화언어가 가진 뜻을 정확히 알고 계셔서 도움이 많이 됐다. 어려운 점이라면, 여성의 느낌으로 서로 의논하고 이야기할 때 약간씩 어긋남이 있다는 것이랄까.

폐교를 많이 다니면서 찍지 않았나. 전주공전 폐교에 여우계단 세트를 만들었고, 박한별이 나온 선화예고에서 무용실과 조소실 복도, 영락고에서 학교 로비와 외경, 옛 수도여고에선 교실과 복도 등을 찍었다. 선화예고에서 촬영할 때 일요일이어서 그다지 학생들이 많지 않았는데, 연습나온 학생들이 한별이를 보고 ‘언니 언니’ 하고 모여드는 게 인상적이었다.

하필 예술고를 배경으로 선택한 까닭은. 일단 내가 예술고를 나왔고, 예술고라서 나오는 소재도 많다. 질투는 내가 원하는 걸 남도 원하면서 한 가지 목표로 모아질 때 많이 나오는데 예술고는 대략 같은 걸 목표로 삼게 된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잘 못해서 질투를 느낄 틈도 없었던 것 같다.

여우계단이 이 영화에서 갖는 맥락은. 누구나 다 좁은 길을 통과하고 싶고 그 길을 통과하지 못하면 낙오되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여우계단에는 좁은 길의 은유가 있는 것 같다. 소원을 빌고 그를 통해 좁은 길을 통과했으나 그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과 공포. 좀 거창하게 말하면, 사회에서 뭔가를 이루기 바라고 그걸 이뤘을 때 벌어지는 부작용이랄까.

공포영화를 좋아하나. 원래 안 좋아했는데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많이 봤고 이제는 즐겁게 스릴도 느끼면서 볼 수 있게 됐다. <장화, 홍련>도 재밌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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