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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시아에 취한 런던

<매트릭스> 열풍 뚫고 동아시아권 영화의 활약 두드러져

6월 한달 동안의 영국 극장가는 네오의 승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그 사이 개봉한 어떤 다른 할리우드영화들에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 3위와도 상당한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7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이 <매트릭스>의 독점 시대에 두드러진 약진을 보이고 있는 것은 흥미롭게도 일본, 한국, 중국 등의 동아시아영화들이다. 최근 몇년간 리안의 <와호장룡>, 성룡이 출연한 할리우드영화들이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이렇게 동시에 많은, 그러면서도 다양한 아시아영화들이 개봉되어 고르게 관심과 인기를 모으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현상은, 몇년 새 세계 영화계에서 두드러지게 약진해온 아시아영화의 힘이 비로소 영국 극장가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먼저, 가장 두드러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일본영화들이다. 이것은 특히나 영국에서 인기가 높은 기타노 다케시의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 이유에서 가장 극장가에서 선전하고 있는 일본영화는 기타노 다케시의 새 영화 <돌스>. 일본의 대중적인 전통 인형극 분라쿠의 형식을 빌린 이 영화는, 지금까지 기타노 다케시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폭력적인 야쿠자/경찰 이야기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를 엿보게 하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적인 긴장감과 스토리의 재미가 떨어지면서, 서구에서 유명한 일본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상들이 일본의 사시사철의 계절감을 살린 장면들에 수시로 출연, 동양적인 예쁜 색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기타노 다케시의 뒤를 이으며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 감독은 미이케 다카시. 1999년 <오디션>으로 런던에 충격적으로 데뷔한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로는,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리메이크한 <가타구리가의 행복>이 지난 5월 개봉한 데 이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치 더 킬러>가 DVD 출시와 동시에 런던 시내에서 개봉했었다. 이 영화는 영국의 영화등급심의기구인 BBFC의 요구에 따라 성적인 폭력이 담긴 장면 3분가량을 삭제, 개봉했다. 이 외에도 미이케 다카시만큼이나 기이하고 극단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쓰카모토 신야의 이 개봉해 있고, 나카다 히데오의 공포영화 <검은 물 밑에서> 역시 <링> 시리즈의 과거 인기에 힘입어 극장가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 잔혹하고 폭력적이거나, 끔찍한 공포영화들이 줄이어 개봉한 것은 영국 배급회사인 메트로 타르탄의 ‘아시아 익스트림’이라는 프로젝트에 의한 것.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봉된 한국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이 영화는, 계급간의 적대감을 보여주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영화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와는 달리 특이하고 기이하면서도 뭔가 특별한 여운을 남기는, 훌륭한 비주얼과 완성도 있는 영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위의 영화들이 상업적인 방식으로 주로 폭력, 공포 등에 기댄 영화들이라면, 고급 취향의 ‘아트영화’로는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영국 개봉 제목에는 <여자와 시에 취해>(Drunk on Women and Poetry)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과, <푸른 연>을 만들었던, 중국 5세대 감독들의 대표주자 티안주앙주앙의 <작은 마을의 봄>도 평단의 지지를 받으면서 선전하고 있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것은, 국내 개봉시와는 달리 <취화선>의 홍보나 이미지는 주연인 최민식이 아니라 유호정의 이미지를 앞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들이 영어권 인디영화들과 어깨를 겨루며 고르게 선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바야흐로 런던에는 아시아영화의 푸르른 여름이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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