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 포 콜롬바인> 등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약진
‘리얼리티’가 미국 텔레비전뿐 아니라 극장가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무인도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백만장자의 약혼반지를 놓고 경쟁하는 내용의 리얼리티 쇼가 텔레비전을 점령한 미국사회에서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들이 주목할 만한 박스오피스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 <버라이어티> 최신호는 <볼링 포 콜럼바인>의 성공을 전후해, 오랫동안 ‘의미있고 재미없는 영화’로만 여겨졌던 논픽션영화가 최근 들어 미국 관객과 투자, 배급사에 상품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140만달러의 대박을 터뜨린 <볼링 포 콜럼바인>의 성공은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소니픽처스 클래식의 <위대한 비상>이 북미지역 절반에 해당하는 소규모 시장에서 느린 속도로 배급되었음에도 300만달러의 짭짤한 입장수입을 올렸고, 전미철자법대회에 출전했던 어린이들의 후일담을 추적한 <스펠바운드>도 최종 수입 300만달러를 점치고 있다. 롱아일랜드의 유대계 가족의 성범죄 추문을 취재한 <프리드만 가족 따라잡기>도 성공 사례. 배급사 마그놀리아픽처스는 이 다큐멘터리가 적어도 250만달러의 수입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실 100만달러를 ‘매직 넘버’로 보는 다큐멘터리들의 흥행은 1억달러 수입을 올려야 ‘고지’에 올랐다고 평가되는 스튜디오영화에 견주면, 물론 보잘것없는 규모다. 그러나 이들의 성과는 다큐멘터리 역사상 희귀한 결실인 동시에 잘해야 250만달러 선을 턱걸이하는 인디영화나, 외국어영화들과 비교해도 우수한 성적이다. 흥행의 터부로 통했던 다큐멘터리가 이처럼 상업적 매력을 발휘하고 있는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최근 다큐멘터리들이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데 성공했다는 점.
자연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상> 정도를 제외하면 기개봉 다큐멘터리들과 연말까지 개봉 스케줄을 잡은 신작 다큐멘터리들은 모두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제공하는 오락의 성격은 판이하지만, 현실이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퍼뜨린 TV 리얼리티 쇼의 유행과 9·11 이후 미국인들의 의식에 침투한 진짜 휴먼드라마에 대한 갈증도 관객 취향 변화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독창성과 완성도가 없었다면 최근 다큐멘터리들의 극장 선전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니픽처스 클래식의 공동대표 마이클 바커는 “인디 영화계로부터 사람들이 기대하는 신선함과 새로움이 최근에는 다큐멘터리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마케팅에서도 다큐멘터리는 나름의 장점을 발휘하고 있다. 따놓은 프리미엄이라 할 수 있는 평단의 호의적 리뷰 위에 최근의 논픽션영화는 전에 없이 미디어의 관심까지 끌고 있다. <프리드만 가족 따라잡기>는 <피플> 기사로 주목받았고, <스펠바운드> 역시 2003년 전미철자법대회와 시기가 맞아떨어져 <오프라 윈프리 쇼> <투데이쇼> 등에 노출됐다. 교육적 성격을 살려 조류 동호회나 교사협회 등 관련 단체를 표적 공략할 수 있다는 것도 다큐멘터리만의 강점.
<버라이어티>는 배급사가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인식함에 따라 올해 더 많은 양질의 기록영화를 미국 극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전직 미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를 통해 미국사를 다시 보는 <전쟁의 안개>, 국내에서도 개봉된 <마지막 수업>, 브라질의 하이재킹 사건을 소재로 한 <버스174> 등이 오락영화 시즌이 끝나는 가을부터 크리스마스까지 개봉날짜를 받은 영화들이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