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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펀드야,너 요즘 뭐하니?
이영진 2003-06-26

충무로 돈 가뭄 속 <올드보이> <툼레이더2>등 하반기 네티즌 펀드 기지개

지난해까지만 해도 <씨네21> 팩스는 “최단시간 내 네티즌 공모가 마감됐다”는 내용의 전갈을 수도 없이 뱉어냈었다. 개봉을 앞둔 영화사의 기획실에서 보낸 이 보도자료는 “접속 홈페이지가 수도 없이 다운됐다”며 “해당 영화에 대한 관객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소식을 으레 적었다. 하지만 ‘신기록 퍼레이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점점 뜸해지더니 연말 이후부터선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 마케팅의 일환으로 시작하여 한때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까지 여겨졌던 네티즌 펀드가 더이상 영화쪽에 신규 공모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6개월. 온라인에서 일반 네티즌들의 돈을 모아 영화에 투자하는 네티즌 펀드가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선두에 있는 업체는 심마니엔터펀드에서 분사한 엔터박스(www.enterfund.com)다. <색즉시공>(공모액 1억3천만원, 예상 수익률 200%)과 <품행제로>(공모액 1억2천만원, 예상 수익률 120%) 등을 끝으로 올해 들어 더이상 신규 공모를 진행하지 않던 엔터박스가 6월을 기점으로 적극적인 하반기 공략에 나서고 있다. 충무로는 엔터박스의 신규 공모가 네티즌 펀드의 기사회생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스타트는 나쁘지 않다. 포문을 연 <장화, 홍련>(공모액 3억원)이 순항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 이 밖에도 <아카시아>(예상 공모액 5억원), <원더풀 데이즈>(예상 공모액 2억원), <올드보이>(예상 공모액 2억원), <툼레이더2>(예상 공모액 3억원) 등 4편의 투자 공모를 맡는 등 힘찬 발돋움을 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엔터박스는 영화뿐 아니라 방송, 음반 등에까지 영역을 넓혀 신규 투자작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 엔터박스의 권선국씨는 “지난 연말부터서 모든 네티즌 펀드가 영화쪽 신규 공모를 중단한 탓에 부담이 크다”면서도 앞으로의 행보에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고 보니, 5∼6개 네티즌 펀드들이 온라인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지난해와 형국은 많이 다르다. 일본 등지에서는 국내 네티즌 펀드의 활황이 인터넷 사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기까지 했으나 네티즌 펀드는 지난해 투자 공모했던 대형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극장가에서 ‘물’을 먹으면서 수익률 악화일로를 걸었고, 끝내 해를 넘기지 못하고 영화쪽 신규 투자를 접어야 했다. 투자자들의 기대와 신뢰가 떨어진 데는 투자금 환수, 수익 배당률, 세금 원천 징수 등에 있어 잡음이 적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던 영화계도 돈가뭄이 장기화되면서 네티즌 펀드를 반기는 표정이다. 쇼이스트의 김장욱 이사는 “네티즌 펀드의 도움이 있었더라면 제작비의 일정 부분이 부족해서 개봉 일정이 미뤄졌던 영화들도 관객을 더 빨리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현재 충무로 상황에 비춰볼 때 네티즌 펀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투자예비군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한다. 적지 않은 돈이 충무로에서 빠져나갔지만 이를 메워줄 자본이 등장하지 않은 공백 상태에서 네티즌 펀드에 대한 충무로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대가 높아지면 책임 또한 무거워지는 법이다. 한때 네티즌 펀드를 운영했던 한 관계자는 “이전보다 세제 등이 정비됐고 시스템 또한 어느 정도 완비됐다”고 들었다면서도 “명분과 수익 모두를 창출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전체 공모액 중 일부 투자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이벤트성 기획에 매몰되는 등 이전에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다시 반복한다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타 네티즌 펀드들이 엔터박스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