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 등으로 내 부모님 세대의 연인이 되었던 배우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이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7세. 그의 대변인 먼로 프리드맨(Monroe Friedman)이 미국시간으로 6월 12일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그레고리 펙은 그 전날 밤에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프랑스 출신의 아내 베로니크 파사니 펙(Veronique Passani Peck)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한다.
이곳 미국의 매스컴이 요약해서 전하는 그의 생애를 볼 것 같으면, 그레고리 펙의 죽음은 충분히 평화로우며, 애도될 만한 자격이 있는 듯 하다. 그는 오늘의 CNN 뉴스가 말하듯이, 영화 속 "스타"였으며, "최고들 중 최고의 한 사람(one of leading leading men)"이었을 뿐만 아니라, 존경할만한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도 일생을 통하여 갖추고 있었다.
그레고리 펙은 1916년 4월 5일에 캘리포니아의 라 졸라 (La Jolla)에 태어났다. 본명은 엘드리드 펙(Eldred Peck). 어린 시절에 그는 카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 군사사관학교를 다녔는데, 한때는 사제가 될 것을 꿈꾸기도 했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샌디에고 고등학교(San Diego High School)를 졸업하고, 버클리 대학(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 진학하여 영어를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 그가 학업을 완전히 마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 후에는 뉴욕으로 가서 1942년에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1944년에 영화 <영광의 날들>(Days of Glory)로 그레고리 펙은 마침내 영화에 진출한다. 이후 1945년의 영화 <천국의 열쇠> (The Keys of the Kingdom) 속에 나타나는 사려깊은 사제의 역으로부터, 설명이 필요없을 1953년의 <로마의 휴일> 속의 기자 역, 1956년의 <백경> (Moby Dick)의 에이허브 선장, 1978년의 영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The Boys from Brazil) 속의 나치 전범 맹겔레 (Mengele) 역할에 이르기까지, 그레고리 펙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 속에서 폭넓은 연기력을 과시하며 배우로서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빛나는 경력 동안, 그레고리 펙은 다섯 번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었고, 1952년에 나온 영화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 영화 속에서, 누명을 쓴 흑인을 변호하며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 역을 맡았는데, 그가 연기했던 그 배역은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속 주인공(the greatest movie hero of all time)"으로 미국영화협회 (the American Film Institute)에 의해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레고리 펙이 다채로운 연기 폭을 과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로 그는 도덕적이고 정의감있는 인물의 역을 많이 맡아 연기했다. 그런데, 그레고리 펙은 자신이 50여편 넘게 출연했던 영화 속에서만 도덕적이며 성실한 인물의 역을 맡았던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도 사회 활동가로서 타인들의 모범이 되었다고 미국의 각 매체들은 전한다.
1942년에 결혼했던 첫 아내와 1954년에 이혼했던 것 외에는, 그 어떤 잡음도 그레고리 펙은 자신의 사생활에서 일으키지 않았으며, 나름대로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사회에 봉사했다고 한다. 그는 위에 언급된 미국영화협회 창립당시 회장의 직분을 수행하기도 했고, 미국 암 협회(American Cancer Society), 예술 진흥기금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등 다양한 기구 및 단체의 대표로 활약하였다. 또한 그는 1972년에 월남전에 반대하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으며, 1987년에는 고르바쵸프 치하의 소련에 초청되어 "핵 없는 세상과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For a Nuclear-Free World and the Survival of Mankind)"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는 등 자유주의자적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내가 오늘 본 CNN 뉴스 중에 잠깐 나온 생존시의 어느 인터뷰에 속에서, 그레고리 펙은 "모든 (영화 속) 인물의 형상화(characterization)의 바탕에는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생활 속의 자기 인격이 배우로서의 자신의 연기 속에도 필연적으로 반영된다는 의미인 듯 하다. 좋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말로, 배우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라는 의미로서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헐리우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배우 그레고리 펙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배우들도 그레고리 펙만큼 나름대로의 자랑스러운 인생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사실 우리나라에 서양식 연극의 개념과 영화가 소개될 때, 그것들은 모두 민족 문화 개선을 위한 사회운동으로서 기능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 새롭고 낯선 분야에 종사하던 우리의 선구자들은 한편으로는 사회에 천대 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운동가로서의 긍지를 결코 잃지 않았었던 것으로 관련서적들은 기록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배우가 가져야할 예술가로서의 명예와 운동가로서의 사회적 소명은 망각되고, 그저 손쉽게 돈과 인기를 얻는 도구로서만 배우의 길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헐리우드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레고리 펙이 자기 개인과 사회를 가꾸는 일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듯이,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지금의 우리 배우들도 자신과 사회를 가꾸는 일에 보다 마음을 쓸 줄 아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하니리포터 오세준 기자 hblood@worldnet.at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