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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세대교체 [1]
김현정 2003-06-13

변방의 예술가들, 신세기 할리우드 점령하다

작가주의 블록버스터 시대 맞은 할리우드, 그 대변신 드라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샘 레이미, 피터 잭슨, 브라이언 싱어, 리안, 워쇼스키… 이들이 누구인가. 신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웅적 지휘자 아니던가. 그런데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들은 할리우드 변방의 예술파 혹은 컬트감독 아니었던가. 이건 정말 경악할, 아니 경이로운 일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이제 멍청하고 엉성하긴커녕 블록버스터 시대가 열린 1970년대 중반 이래 가장 심오하고 정교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 편집자

1998년 10월, 유니버설픽처스는 재정난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개발 중이던 <헐크>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이미 2100만달러가 들어갔던 <헐크>는 <아마겟돈> <쥬만지>의 작가 조너선 헨슬리를 감독으로 정해두고 있었다. 그러나 2년 뒤 유니버설은 <헐크>의 봉인을 뜯었고, 리안을 불러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와호장룡>이 외국어영화로는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기 전, 리안은 <아이스 스톰> <센스, 센서빌리티> 등을 연출한 예술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만든 가장 비싼 영화는 3500만달러짜리 시대극 <라이드 위드 데블>이었고, 작가로나마 블록버스터 몇편을 경험한 헨슬리가 1억5천만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다루기엔 더 적당한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헐크> 공동제작사인 마블엔터테인먼트의 CEO 애비 애러드는 “<엑스맨>에는 깊은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마블코믹스 원작영화로는 처음으로 성공했다. ‘저 깊이있는 남자를 보라. 이건 7월에 개봉하는 영화인데 말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5월과 8월 사이엔 갑자기 바보가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라고 리안을 감쌌다.

그리고 그처럼 ‘깊이있는’ 감독들이 새로운 천년의 블록버스터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와 <스파이더 맨>의 샘 레이미,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 <배트맨: 원년> 감독으로 내정된 대런 애르노프스키 등이 그들이다. 이른바 작가주의 블록버스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관객은 ‘오리지널’을 원한다

<엑스맨>

브라이언 싱어 감독

처음 듣는 건 아니지만, 블록버스터 감독으로서는 너무도 낯설게 들리는 이 이름들을 더듬다보면 자주 브라이언 싱어와 마주치게 된다. <스파이더 맨>의 감독이 됐다는 사실을 그 자신마저도 신기해하는 샘 레이미의 경우도 그렇다.

1995년 MGM과 바이어컴을 법정에서 물리치고 <스파이더 맨>의 판권을 얻어낸 콜럼비아픽처스는 제임스 카메론과 데이비드 핀처, 팀 버튼, 크리스 컬럼버스 등을 포함한 감독 리스트를 만들었지만, 그 안에 샘 레이미의 이름은 없었다. 레이미는 1시간30분 동안 콜럼비아 간부들을 붙들고 <스파이더 맨>을 향한 애정을 고백하면서, <배트맨과 로빈>의 조엘 슈마허보다 캐릭터가 돋보이는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처럼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레이미는 배우로 출연한 <인디안 썸머>에서 밤새 <스파이더 맨>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줄 만큼 원작만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콜럼비아가 바라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한 것이었다. 그걸 몰랐던 핀처는 외로운 십대 소년 피터 파커가 어떻게 스파이더 맨이 되는지는 5분 안에 몰아넣고, 시리즈 중 한권인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으로 들어가 장중한 오페라 같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리스트에서 삭제당했다. 콜럼비아는 ‘오리지널’을 원했다. 전세계에 붉고 푸른 그림자를 남긴 ‘오리지널 캐릭터’가 사라진다면 <스파이더 맨>은 돈을 벌어야 하는 콜럼비아엔 의미가 없는 영화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스파이더 맨이라는 캐릭터에게 매혹당한 레이미는 가장 먼저 주연배우를 물색하는 작업부터 했다.

샘 레이미와 리안을 블록버스터 세계로 끌어들인 브라이언 싱어는 애초 <엑스맨>을 냉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골칫덩어리 프로젝트 <엑스맨>을 물려받은 이십세기 폭스의 로렌 슐러 도너는 캐릭터를 살려야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판권을 가진 마블코믹스는 <세븐>의 앤드루 케빈 워커와 <맨 인 블랙>의 에드 솔로몬, <글래디에이터>의 존 로건 등이 쓴 시나리오를 계속 무시하고 있었다. 판권 협상 중에 프로젝트 책임자로 임명된 슐러 도너는 싱어가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다섯명의 주요 캐릭터를 능숙하고 흥미있게 배치했고,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에선 배우로부터 진실한 연기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수십년 동안 수많은 돌연변이들이 나타나고 사라져간 <엑스맨> 시리즈를, 무서운 팬들로부터 최대한 욕을 덜 먹으면서 영화로 만들기에, 싱어만큼 적당한 감독은 없어 보였다. 프로듀서 톰 디산토는 “이 만화를 잘 보면 사비에 교수는 마틴 루터 킹 같고, 매그니토는 말콤X 같지 않나?”라고 지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싱어를 설득했다.

그러나 97년 여름 이십세기 폭스의 뼈아픈 실패가 없었다면 이 메이저 영화사가 싱어처럼 작은 영화만 만들던 감독에게 여름 시즌 블록버스터를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터 바트는 <할리우드의 영화전략>에서 “여름 시즌은 할리우드 흥행 수입의 대략 40% 정도를 책임진다. 그래서 이 시즌은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한 결정적인 시기”라고 말했다. <엑스맨>은 7500만달러로 만든 비교적 저렴한 영화였지만, 폭스로서는 1년 분량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기도 했다. 이십세기 폭스는 97년 6월 1억 1천만달러가 들어간 <스피드2>를 대작으로 내세웠지만, 개봉 첫주 수입은 그해 20위 안에도 들지 못할 정도였다.

피터 바트는 당시 폭스 사장이었던 빌 메커닉이 거대한 유람선이 마을 한가운데로 쳐들어오는 장면에 관객이 지루해하는 광경을 보면서 “그저 재미있는 탈거리 정도로는 안 된다”고 실망을 표시했다고 썼다. <스피드> <트위스터>에서 스피드와 특수효과를 주연배우 삼아 승부를 끝냈던 얀 드봉은 같은 전술을 써먹으려고 했지만, 관객은 그를 거부했다. 더이상 기술자는 필요하지 않았다.

‘작가’감독들의 블록버스터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각각 <죠스>와 <스타워즈>로 블록버스터 시대를 연 1970년대 중반 이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오래도록 지능은 낮고 힘은 센 공룡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그 속엔 종종 맹목적인 미국식 애국주의까지 곁들여져, 세계 영화인들로부터 영화문화를 타락시키는 주범으로까지 지탄받았다. 그나마 스필버그와 루카스의 대작들에는 정교한 테크닉이라도 있었지만, 또한 테크놀로지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같은 예외도 없지 않았지만, 정신 빼놓은 스펙터클 외엔 어떤 장점도 없는 대작들이 20년 넘게 세계 영화시장을 통치하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1996년의 <인디펜던스 데이>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거의 이치에 닿지 않는 이야기, 몰염치한 미국 중심주의, 유치한 영웅담이 결합된 이 멍청한 영화는 그해 세계를 뒤흔들었다.

멍청한 공룡의 멸종이 시작된 건 공교롭게도, <인디펜던스 데이>의 제작진이 만든 <고질라>가 엄청난 실패를 기록한 1998년 전후였다. 여기엔 1년 전 <배트맨> 시리즈의 명예에 먹칠한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과 로빈>, 그리고 전편을 모방하면서 더 멍청해진 <스피드2>의 실패도 한몫했다. 블록버스터의 이상 징후는 1990년대 초반부터 드러났지만, 이 두 공룡의 추락은 할리우드의 흥행 도사들을 패닉 상태로 몰고갔다. 출구가 필요했다. 그건 뜻밖의 곳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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