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반미는 곤란? 칸영화제 <엘리펀트> 황금종려상·감독상‥<도그빌>은 빈손
25일(현지시각) 막내린 56회 칸 국제영화제의 공식경쟁 부문 결과는 ‘대이변’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사람들을 술렁이게 할 정도였다. 이날의 주인공은 미국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 그는 막판까지 황금종려상 후보로 강력하게 점쳐졌던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과 드니 아르캉의 <야만족의 침입>을 젖히고, 황금종려상과 감독상까지 휩쓸었다. 남녀주연상 외에 이처럼 주요상을 2개씩 이상 받은 것은 <바톤 핑크>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콜럼바인 고교 총격사건을 소재로 한 <엘리펀트>는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파괴하는 영화형식과 숨이 멎을 듯 눈시리게 아름다운 영상으로 화제를 불렀지만, 사건의 원인과 해결책에 침묵한 데 대해 특히 미국 평론가들로부터 “무책임하다”거나 “피상적”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파트리스 셰로, 스티븐 소더버그, 대니스 타노비치, 멕 라이언, 장원, 아이쉬와랴 레이 등 심사위원들은 이같은 비판보다는 ‘독립영화’ 방식으로 폭력의 잔인함을 ‘말보다 영상’으로 보여준 반 산트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반 산트는 결과발표뒤 “이 영화가 반미영화라 생각하진 않는다. 특별히 미국적인 것 보다는 내가 바꿔야 한다고 느끼는 어떤 시스템을 비판한 것”이라고 자신의 영화에 대해 설명했다.
△ <우작>의 누리 빌게 제일란
심사위원 대상은 터키 누리 비예 세일런 감독의 <우작>에 돌아갔다. 이스탄불에 홀로사는 사진작가와 시골서 올라온 사촌동생을 통해 삶의 고독을 나직하고 쓸쓸하게 그린 이 영화는 두 주인공, 무자페르 오즈데미르와 메메트 에민 토프락에게 공동남우주연상도 안겨줬다. 동생역을 연기한 토프락은 칸 초청이 확정된 직후 교통사고로 숨져 직접 상을 받을 수 없었다.
시사회에서 20분 이상 기립박수가 터지고 평단과 일반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아르캉의 <야만족의 침입>은 ‘가족과 우정, 삶의 의미에 대한 송가’라 불릴만한 수작이었지만 각본상과 여우주연상(마리 호세 크로즈)을 가져가는 데 그쳤다. 이란 사미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오후 5시>는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으며 황금카메라상은 비평가주간에 상영된 덴마크 크리스토퍼 보에 감독의 <리콘스트럭션>이 받았다.
영화제 초반 심사위원 회견부터 화두에 올랐던 ‘반미 분위기’를 심사위원들이 의식한 걸까. 폰 트리에의 야심적인 영화 <도그빌>이 빈 손으로 돌아간 건 그가 2년전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이유 외에도 이번 작품이 지나치게 ‘반미영화’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들도 적잖게 나오고 있다. 또 올 칸 영화제는 “그 어느해보다 경쟁작의 수준이 떨어지는 해”라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르몽드>의 지적대로, <엘리펀트><도그빌><모압스토리> 등 ‘보는 이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한 영화’들이 대거 등장한 올 칸 영화제는, 새로운 영화의 길을 찾는 세계 감독들의 본격적인 모색처럼 보였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