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란 게 원래 놀자고 하는 거지만 마음 편하게 그야말로 ‘놀’ 수 있는 게임보다는 그렇지 않은 게임이 더 많다. <라이덴>이나 <식신의 성> 같은 슈팅 게임을 하자니 정확한 상황 판단과 빠른 반사신경과 과감한 행동력이 필요하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나 <철권> 같은 대전 액션 게임은 여기에 상대의 심리를 읽고 순간순간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추가로 요구된다. 복잡한 기술들을 배우고 익힐 꾸준함 역시 필요하다. <마리오> 같은 액션 게임, <스타크래프트> 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역시 비슷한 능력이 요구된다.
현실 공간이건 사이버 공간이건 운동신경쪽과는 거리가 멀다면 대신 머리를 쓰는 게임을 하면 된다. <삼국지>나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같은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도 이쪽 과지만, 역시 골치 썩이는 게임의 대표 주자는 <미스트>를 필두로 하는 어드벤처 게임들이다. 주어진 단서들을 조합해 추리해 나가는 어드벤처 게임은 긴장감이나 호쾌함은 덜하지만 대신 퍼즐을 풀어냈을 때의 성취감이 있다. 한때는 게임계의 맏형 노릇을 하던 어드벤처 장르가 요즘은 눈에 띄게 쇠퇴했다. 틀림없이 점점 머리를 쓰기 싫어하는 세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육체도 두뇌도 자신없는 사람들이라도 실망하기는 이르다. 고맙게도 근성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임도 존재한다. 일명 ‘노가다’ 게임에서는 은근과 끈기, 불굴의 정신으로 다른 모든 능력부족을 메울 수 있다. <파이널 판타지> 1편 같은 오래된 게임부터 <바람의 기사>처럼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게임까지 이른바 일본풍 롤 플레잉 게임에서는 대개 레벨 앞에 장사 없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적이라도 거듭되는 전투로 레벨을 올려놓으면 결국은 이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와 모두 거리가 먼 대다수의 사람들은? 놀자고 하는 일에서조차 좌절을 겪을 것인가? 게임 오버 화면을 노려보며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성찰할 것인가?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좀더 말랑말랑하고 편안한 방법도 있다. 바로 무한 컨티뉴다. 무한 컨티뉴 신공, 이것이야말로 게임 인생의 진정한 벗이자 보통 게이머의 희망의 여신이다. 게임 중 죽으면 컨티뉴 화면이 뜬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물론이다. 집에서 게임하는데 동전을 넣을 필요는 없다. 반복에 반복을 또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클리어한다. 언제까지나 계속 출연해 똑같은 짓을 해야 하는 적들은 지겨워서 죽을 지경일 것이다. 내가 게임을 클리어하기를 가장 애타게 바라는 건 틀림없이 그들일 것이다.
이 좋은 걸 왜 몰랐나 싶다. 하면 할수록 마음에 든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하면, 다음번에야말로 기필코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실패다. 집어치우려다가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 다시 도전한다. 문득 거울을 본다. 눈에는 핏발이 서고 손가락에는 물집이 잡혔다. 시계를 보니 일단 중지했다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어도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러갔다. 더 무서운 건 무한 컨티뉴에 익숙해지다 보면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해볼 의욕이 원천적으로 삭제된다는 것이다. 좀더 노력하면 한번에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귀찮은데 죽으면 다시 이어가지 하는 생각이 앞선다. 똑같은 플레이를 반복하다 보면 게임 자체가 지겨워진다. 세상의 다른 모든 묘안들과 마찬가지로 무한 컨티뉴는 너무 달콤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