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도 탈레반이다"
첫 장편영화 <사과>로 칸 국제영화제의‘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고 20살 때 <칠판>으로 최연소‘황금카메라상’수상자가 되었던 사미라 마흐말바프(23)는 이란의 유명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딸이자,‘칸이 총애하는’ 미래의 감독이다. 지난주 프랑스 칸에서 공식부문 경쟁작으로 상영된 <오후 5시>는 그의 세 번째 영화이자 탈레반이 물러난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란 유명감독 모흐센의 딸
탈레반이 떠난 뒤에도 아프간 여성들의 삶은 통째로 바뀌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인 20대 초반의 노그레는 12살짜리 소녀들과 함께 학교에 다닌다. “학교에 올 때는 하얀 베일과 검은 옷을 입어야 해. 노그레, 넌 왜 파란 옷이니” “선생님, 제가 유니폼을 입는다면 아버지가 나가질 못하게 할 거에요.” “왜” “아버지는 여자가 공부를 해선 안된다고 믿거든요.” 그는 이슬람 사원에 가듯 집에서 빠져나와 하얀 신을 갈아신고 부르카의 베일을 젖힌 뒤 학교에 간다.
마흐말바프는 “9.11 이전에 만든 아버지의 <칸다하르>가 ‘잊혀진 나라’에 대한 영화였다면 <오후 5시>는 아프간에 대한 온갖 잘못된 인식을 고치기 위해 만든 영화”라고 두 영화를 구별했다. “매스 미디어는 하나의 시각으로 아프간을 ‘폭격’했고, 조금씩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부시처럼 바꿔놓았다.” 그는 “어렸을 때 프랑스제 공군기가 사담 후세인을 공격하겠다며 날아와 할머니 이웃의 집과 내 동네친구들을 죽였던” 데 대한 생생한 기억과 8살 때 아버지 영화 <사이클리스트>에 출연하며 알게 된 이란의 아프간 난민의 존재, 9.11에 관한 감독들의 옴니버스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아프간에 관한 영화를 찍게 됐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억압적 관습"
영화의 출연자들은 모두 현지에서 만난 비전문배우들이다. “아프간 여성들한테 영화에 출연해달라면 그들은 춤추고 노래해달라는 건 줄 알고 모두 달아났다. 아직도 길에선 맨 얼굴의 여성을 보면 눈을 가리며 ‘신이여 용서하소서’라 말하는 남자들이 많다. 노그레 역을 맡은 아헬레를 설득하는 것도 몹시 힘들었다.” 마흐말바프와 같은 23살이지만, 벌써 아이가 세명이고 남편은 미국 공습 때 실종된 이 주인공은 결국 칸에 오지 못했다.
마흐말바프는 탈레반이 아프간뿐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억압적인 관습, 교육과 정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인 미국사회의 심장부에서도 파시스트 부시를 둘러싼 존재들은 탈레반이다. 부시도 탈레반이다. 민주주의라는 게 군사행동으로 세계 어느 곳에건 이식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내 영화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정교한 소리·아름다운 영상
사실 스페인의 시인 로르카의 시 ‘오후 5시’를 낮은 소리로 속삭이는 첫 장면부터, 이 영화의 정교한 사운드와 아름다운 영상은 정치적 발언을 압도한다. 아버지의 <칸다하르>가 불러일으킨 논쟁과 마찬가지다. 전반부의 터치는 유머러스할 정도다. 하지만 노그레가 난민 출신 시인을 알게 되고, 다시 가족들과 난민이 되어 길을 떠나며 영화는 아프간의 비극적인 현실에,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에 이른다. 23살의 이 여성감독은 충분히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 칸/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 사진 정진환 <씨네21> 기자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