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의 92%, 프랑스 영화사와 파트너 맺어
칸에 가려면 프랑스 회사와 손잡아라. <버라이어티> 최근호는 칸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들에 대한 통계를 바탕으로 이렇게 비꼬았다. 기사에 따르면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들은 예외없이 한개 이상의 프랑스 회사를 파트너로 가진 작품이었다. 이때 파트너라 함은 공동제작이나 판매, 배급 등 세 가지 핵심 분야에서 회사 차원의 공조가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특히 1999년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 경쟁부문에 오른 110편 중 무려 92%에 해당하는 101편의 영화가 하나 이상의 프랑스 파트너를 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의 한 프로듀서는 “칸 선정위원회에 영화를 제출할 때 반드시 프랑스 배급업자의 손으로 하게 하라. 그것도 힘센 사람이라야 한다”고 충고했다. 물론 <볼링 포 콜럼바인>의 수상을 끌어낸 UA나 <어바웃 슈미트>를 출품했던 뉴라인처럼 이런 경로를 밟지 않은 예도 있으나, 이들 또한 질 자콥이나 티에리 프리모 같은 영화제의 거물급 관계자들을 핫라인으로 삼았다. 유럽의 또 다른 제작자는 “선정위원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품을 찾는 척하지만 실은 영화제와 탄탄한 관계를 맺고 있는 프로듀서가 선정의 기본이 된다”며 “의사소통, 비슷한 취향”이 그 핵심이라고 피력했다.
이에 대해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질 자콥은 “프랑스영화가 황금종려를 받은 경우가 별로 없다”거나 “외국의 인디 프로듀서들에게 출품에 따른 제반 비용을 줄여주고 편의를 제공하려는 것”이라는 등의 해명을 했으나, 통계의 의미를 완전히 반박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을 두고 “아는 바 없다”며 특유의 외교성 발언을 한 디이터 코슬릭 베를린 집행위원장과 달리, 베를린을 거쳐 현재 베니스를 지휘하고 있는 모리츠 데 하델른은 비교적 핵심을 짚었다. 그는 우선 질 자콥의 비용 절감론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 프랑스 영화계가 전통적으로 자국의 영토 안에 있는 것들을 위해 방어적인 전략을 써왔다고 지적한다. 업계 사람들은 여기에 덧붙여 프랑스 배급사들이 현지의 모든 절차에 능통하다는 실용적인 측면, 유니프랑스에서 프랑스 판매상들에게만 지급하는 5만달러 내외의 보조금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칸영화제와 프랑스 영화업계가 맺고 있는 이같은 공생관계는 우리에게도 그리 신기한 소식이 아니다. 문제는 그 영향에 대한 분석과 대응 태도일 것이다. 우선 이같은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한국식 로비 관행으로 확대 해석하면서 불필요한 저자세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칸 선정위원회와 잘 알고 지내는 한 프랑스 인사는 한국의 어떤 영화에 대해 편집을 수정하자고 제안했다가 감독이 거절하자 제작사에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지르는 등의 무례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칸영화제가 특정 사회의 특수한 취향을 바탕으로 시장을 만들고 유지시키는 일종의 정책기구이자 박람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버라이어티> 기사가 전통적으로 프랑스에 대해 문화적 열패감을 갖고 있는 미국인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오스카는 오스카의 방식으로 할리우드를 확대재생산하고 칸은 칸의 방식으로 프랑스 문화산업의 첨병 노릇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