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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우리가 본 것을 아느냐
2001-05-09

김지운 칼럼

외국에 갔다오면 만나는 사람마다 “어땠어? 좋았어?” 하고 물을 때가 많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갔다왔다면 “뭐 보고 왔어?” 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궁색하게… 탱고 추데… 하고 대답한다. 사실 외국에 나가면 유명한 장소보다는 뒷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편이다. 그리고 그렇게 뒷골목을 휘젓고 다닐 때 그곳에 있다는 느낌을 더욱 강렬하게 받는다.

전 지구인도 다 알고, 외계인도 다 아는 유명 관광지나 명소를 다른 나라 관광객 사이에 끼여서 감상하는 것만큼 하품나는 일도 없다. 게다가 덩치 큰 독일 사람들이나 미국 할머니 할아버지, 마주보고 수십번 인사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상대방이 인사하면 또 인사하는 일본인 단체 관광객과 섞이게 되면 정신이 없다. 그런 곳에서 감흥을 찾거나 충만돼 있기란 쉽지만은 않다. “음… 에펠탑을 쇠로 만들었군.” 그러거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어휴 무슨 빌딩이 저렇게 높데유?” 하고 감상을 끝내버린다. 한마디로 전 지구인이 다 알고, 외계인도 다 아는 유명 관광지 또는 장소에 가서는 상당히 심심해지면서 심드렁해지는 기분을 갖게 될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감동의 공식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 것이다.

첫 경험인데도 불구하고, 경험 이전에 우리의 인식이 이미 알고 있고, 알고 있는 그 공식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정작 그 장소에 가서는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며, 그런 곳에서 그곳을 마치 나 혼자 새로 개척했거나 발견한 것 같은 감동과 흥분을 느끼기란 실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음… 이 말을 어떻게 더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나이아가라를 간다고 치자. 나는 나이아가라를 실제로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나이아가라가 엄청 큰 폭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폭포를 보기 전부터, 입구에서부터 모든 시설들이 엄청 큰 폭포임을 마케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엄청 큰 폭포라는 것을 알고서 엄청 큰 폭포를 감상하는 것이다. 결국, 내 감상이란 게 “엄청 크다고 하더니 정말 엄청 크네” 하고 만다. 5분 정도 보고 나머지 3시간은 나이아가라 아니라도 흔히 볼 수 있는 벤치에 앉아 몸을 비비 틀고 있다. 연신 “우리 언제 출발해요?” 하면서.

오히려 즐거움은 예기치 않은 다른 곳에서 만난다. 그런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상관도 없고 이름도 없는 뒷골목 같은 곳에서 팔딱거리는 날생선 같은 리얼리티를 만날 때 열광하고 흥분하고 황홀해진다. 사설이 길어졌지만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새 영화가 극장에 걸리면 서로 잘 아는, 영화 많이 보고 많이 아는, 감독들이나 영화인들끼리 정보를 교환해서 보러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모든 영화들을 다 꿰차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유력한 월·주간 영화잡지의 영화 리뷰를 들추게 된다.

그런데 가끔, 영화평들을 읽다보면 기자나 평론가와 영화광들 사이에 생리적, 영화적 간극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뭐 입장이 다를 수 있고, 생리적으로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각설하고 영화팬 입장에서 나이아가라가 엄청 큰 폭포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상쩍은 동네를 일러주고 그 즐거움을 귀띔해주는 기자나 평론가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도 그런 영화들을 발견하고 지지해주는 기자 또는 평론가들의 리뷰가 즐겁다.

전 지구인이 다 알고 외계인도 다 아는 공식대로 가는 감동의 명화를 보는 것처럼 지긋지긋한 일도 없다. 혼자 후미진 골목을 뒤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가치가 있다.

김지운/ 영화감독·<조용한 가족> <반칙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