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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산업 X-Ray 3 - 대안적 유통질서를 찾기 [1]

한국영화산업 진단시리즈3편-대안적 유통질서를 찾아라5가지 사례로 본 다양한 영화살리는 배급방식의 가능성

배급은 영화산업의 꽃이다. 영화가 ‘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자면 배급시스템부터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가 산업으로 성장한 지난 10년간의 변화에서도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메이저 배급사의 출현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한달에 1편씩, 1년에 12편 한국영화를 배급한다는 것은 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빠른 시간 만들어진 배급시스템은 그만큼 엉성한 면을 갖고 있다. 외형적 성장에 치중한 한국 경제의 발전과정과 비슷하게 국내 배급시장은 메이저 위주, 와이드 릴리스 위주로 형성됐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한국영화산업 진단시리즈 3번째로 한국의 배급시스템을 들여다본다. - 편집자

★ ★ 영화는 확률의 게임이다.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가 상대투수의 구질과 특성을 모른다면 안타를 칠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처럼 영화도 일정한 시장의 규칙을 알아야 흥행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야구에서 게임이 재미있어지는 건 4번타자가 무조건 홈런을 치고, 강속구 투수가 번번이 완봉승을 거두기 때문이 아니다. 삼진만 당하던 타자가 결승타를 때리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실투 때문에 다 이긴 게임을 놓치기도 한다. 확률을 벗어나는 묘미가 있을 때 게임은 정말 흥미로워진다. 그러나 당신이 감독이라면 운에 승부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행운의 여신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모르는 순간, 감독의 머리는 쉴새없이 돌아간다. A투수를 상대로 B타자를 내보냈을 경우와 C타자를 내보냈을 경우, 안타가 나올 확률을 계산하지 못한다면 감독으로서 무능한 것이다. 우선 중요한 것은 타자나 투수의 자질이지만 홈런타자나 강속구 투수만 데리고 게임을 하는 경우는 없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적재적소에 선수를 쓴다면 명승부가 연출될 수 있다. 비록 지더라도 의미있는 패배가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배급은 이런 확률을 만드는 기계이자 공식이다. 배급사가 1년 라인업을 짤 때 타순을 짜는 감독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제작사가 같은 날 개봉하는 다른 영화를 상대편 투수로 여긴데도 이상할 건 없다. 90년대 후반,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 있던 한국영화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하면서 확률의 중요성은 대단히 커졌다. 아마추어 시절 볼 수 없던 각종 기록과 통계가 영화의 흥행을 ‘과학적’으로 예측하라고 재촉한다. 실제로 영화의 유통망은 그간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멀티플렉스는 불과 5년 만에 전국의 극장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고, 직배사 중심의 영화시장은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양대 메이저 체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한국영화가 ‘산업’이 된 결정적 계기가 이같은 배급시스템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급성장에 홀린 눈을 돌려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면, 지금의 배급시스템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마디로 마이너리그 없는 메이저리그다. 개봉 첫 주말 흥행성적이 선수의 운명을 결정하지만 일단 방출되면 갈 곳이 없다. 다행히 첫 주말의 선전에 힘입어 장기상영을 하면 크게 벌지만 개봉 1주일 만에 간판을 내리면 크게 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개봉 첫 주말을 승부처로 삼는 물량공세는 엄청나다. 개봉관 수는 가능한 많이 잡고, 개봉시점에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마케팅비를 쏟아붓는다. 70년대 미국에서 블록버스터의 등장과 더불어 일반화된 배급기법인 ‘와이드 릴리스’(Wide Release)가 지금 한국의 영화시장에선 거의 유일한 배급방식이 됐다. 비용이 늘고 리스크가 급증하는 데도 이런 관행은 현재로선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극장에서 성공해 입소문을 타고 확대개봉, 결과적으로 전미흥행 1억달러를 넘긴 <블레어윗치>나 <나의 그리스식 웨딩> 같은 예를 한국영화로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흥행성공까지 바라지 않더라도 비용과 리스크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소 게으른 관객이 개봉한 지 2∼3주 지난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들 묘안은 없는 것일까?

사례 1 __ <질투는 나의 힘>

★ 지난 4월18일 전국 76개 극장에서 개봉해 1주일 만에 74개 극장에서 종영된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은 와이드 릴리스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프린트 1벌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160만원에서 170만원 사이. <질투는 나의 힘>은 영화제용 프린트 비용 등이 더 들어가서 프린트 만드는 데만 1억9천만원을 썼다. 반면 관객은 6만명으로 영화사에 돌아오는 수입이 고작 1억5천만원. 개봉해서 프린트 비용도 충당하지 못한 셈이다. 이 영화는 11일 만에 개봉했던 모든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고 현재 하이퍼텍 나다에서 하루 1회씩 상영을 하고 있지만 입장료 수입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앞으로 비디오, DVD, TV 판권 등을 팔겠지만 이런 수입을 모두 합쳐도 마케팅에 소요된 6억원을 충당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순제작비 12억원은 고스란히 손실액이 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80벌 넘는 프린트를 뜰 이유가 전혀 없지만 개봉 전에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적어도 투자사인 명필름 입장에선 와이드 릴리스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질투는 나의 힘>의 상업적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봤던 것이다.

현재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와 제작사인 청년필름은 이런 배급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청년필름 김광수 대표는 “몇몇 우호적인 극장과 협의해 장기상영하는 방식이었다면 결과적으로 같은 수의 관객이 들었다고 해도 훨씬 의미있고 비용도 덜 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질투는 나의 힘>에 앞서 개봉한 <지구를 지켜라!> 역시 비슷한 경우다. 전국 80개 이상 극장에서 개봉한 이 영화 역시 전국 관객 6만명에 그쳤다. 2001년 말 ‘와나라고’라 불린 네편의 영화도 비슷한 실패를 경험한 예다. 그래도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고양이를 부탁해>는 1주일 만에 간판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최근 극장가는 관객이 조금 덜 들어도 1주일 더 걸어줄 여유가 없다. 많은 극장에서 개봉하면 그만큼 좌석점유율이 떨어지고 좌석점유율이 떨어지면 영화가 종영될 확률도 높아지는데 와이드 릴리스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순제작비

마케팅비

프린트 벌수

전국관객

입장료 수입(영화사 몫)

최종 수입 예상액

12억원

6억원

83벌

6만명

1억5천만원

4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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