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안방잔치?
경쟁부문 프랑스작품 6개 올려, 질 자코브 집행위원장 복귀 "미국과 갈등 반영?" 질문 쏟아져..
56회 칸 국제영화제가 개막한 14일(현지시각), 새파란 지중해 연안 하늘에서 쏟아지는 태양은 눈부셨다. 프랑스 공공부문 파업으로 니스로 운항하는 항공기가 잇달아 취소되면서 참석자들이 칸에 도착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우여곡절들을, 그리고 주최쪽에서 아이디 카드와 함께 ‘사스’주의문을 나눠줄 만큼 신경쓸 수밖에 없는 사스의 여파를 모두 무색케 할 정도로.
14일 저녁 뤼미에르 극장 앞의 레드 카펫 위로 개막작 <팡팡 라 튤립>의 출연배우 뱅상 페레, 페넬로페 크루즈, 제라르 크롸직 감독을 필두로 지나 롤로브리지다, 모니카 벨루치, 멕 라이언 등 스타들의 ‘행진’이 시작됐다. ‘영화의 수도’에 대한 칸의 자부심은 언제나 대단했지만 올해는 여느해보다 유난하다. 전형적인 프랑스 상업영화를 개막작으로 정했고, 경쟁작 20편중 프랑스 영화를 6편이나 대거 올렸고, 15일을 ‘유럽영화의 날’로 선포했다. 또 재임기간 중 다른 국제영화제에 한번도 가지 않았을 정도로 콧대 높기로 유명한 질 자콥 전 집행위원장이 2년만에 다시 집행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질 자콥 집행위원장이 만든 칸 영화제를 기리는 3부작 가운데 2부작 <행진>(La marche, etc)에 이어 크리스티앙 자크 감독의 1952년작을 리메이크한 개막작 <팡팡 라 튤립>이 상영됐다. 루이 15세 시대를 배경으로 바람둥이 팡팡이 활약하는 시대극 코미디로, ‘시와 같이 함축적인 대사’를 내세웠지만 좋은 평가를 받긴 어려웠다. ‘뮤지컬 코미디’라 부를 만할 정도로 연신 흐르는 음악을 타고 연기하는 배우들은 뮤직비디오 출연자들 같았고 영화속에서 미국을 빗대는 몇몇 농담들을 제외하곤 별다른 웃음도 끌어내지 못했다.
<버라이어티> 칸 특집호는 이번 영화제가 프랑스에 경도된 데다 1세계 중심이라고 꼬집었다. 14일 오후 파트릭 셰로 감독(심사위원장), 중국의 장웬 감독, 미국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배우 메그 라이언 등 심사위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다. 올해 영화들이 프랑스 작품에 경도된 것에 대해 “프랑스와 미국의 갈등이 반영된 것 아니냐”거나, “일부 할리우드 영화인 가운데 프랑스-미국 갈등 때문에 칸을 보이콧하자라는 소문까지 돌았”던 데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심사위원들은 “이 자리에 프랑스 3명, 미국 2명이 앉아 있는게 미국과 프랑스가 계속 대화한다는 증거”라는 답으로 우회했다.
하지만 영화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제인 캠피온, 왕자웨이, 쿠엔틴 타란티노, 코엔 형제 등 거장감독들의 작품완성이 늦어져 초청작에서 빠지면서, 평년이라면 ‘주목할 만한 시선’ 정도에 초청됐을 구스 반 산트, 빈센트 갈로 등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편의 감독들이 대거 경쟁작에 포함된 것이 오히려 칸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경쟁작 가운데 가장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다시 독립영화의 영역으로 돌아온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와 또다른 변신을 보여준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 “음란할 정도로 섹시한” 갈로의 영화는 지난해 <돌이킬 수 없는>에 못지않은 센세이션이 예상된다. 칸/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