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Virgin Spring ,1959년감독 잉마르 베리만출연 막스 폰 시도EBS 5월17일(토) 밤 10시
지금은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영화를 접하기 어렵지 않게 되었다. 비디오로 많은 작품이 출시되어 있고 공중파 방송에서도 가끔 방영한다. 하지만 십몇년 전까지만 해도 베리만 감독은 국내에서 ‘컬트감독’ 대접을 받은 적 있다. <제7의 봉인>이나 <산딸기> 같은 영화는 대학가 근처의 작은 공간에서 소수관객에게 상영되곤 했다. 개인적인 기억을 들춰내자면, <처녀의 샘>의 장면들은 이상하리만큼 강렬하게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순결한 영혼을 지닌 어느 여성의 죽음, 그리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부모의 분노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털어내기 어렵다.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본 감회는, <처녀의 샘>은 촬영, 그중에서도 접사(Close Up)의 사용을 주의깊게 살필 만한 영화라는 것이다.
지주인 토레와 그의 부인 마레타는 예수의 고난을 상기하는 회개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딸 카린은 부모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토레는 카린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부인에게는 딸을 너무 버릇없이 키우는 것 아니냐며 잔소리를 한다. 카린은 교회로 향하던 중 남자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겁탈을 당하고 끝내 목숨을 잃는다. 카린을 살해한 사람들은 우연하게 토레의 집에 들러 하룻밤을 묵게 되고, 토레 부부는 딸의 죽음에 관련된 사실을 알게 된다. 부부는 통곡한다. “나에게 종교적 문제는 늘 살아 있는 그 무엇이다. 하나의 지적 문제로서 말이다.” 베리만 감독의 이야기는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논점이 될 터이다. <처녀의 샘>은 서사가 극히 명료하다. 죽임을 당한 딸로 인해 부모들은 고통받고 또한 엄청난 시련 앞에서 종교적 문제로 갈등하게 된다. 딸을 살해한 자들을 벌하는 것은 종교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되는 것일까? 폭력을 다른 폭력으로 응징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걸까? 왜 지상의 삶은 천상과는 달리 악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들은 영화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명상과 번민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절대자의 부재, 그리고 신과 소통하지 못하는 고통에 관한 스케치는 베리만 감독의 이후 영화들, 즉 <침묵>(1963) 등으로 이어진 바 있다.
영화는 풍부한 상징을 갖추고 있다. 자연물, 즉 물과 불 등은 영화에서 종교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중에서 물의 이미지를 살펴보려면 영화 결말을 논할 수 있겠다. 카린의 시신이 있던 자리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것은 초월적인 대상이 현세의 인간을 향한 ‘답변’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베리만 영화 중에서 드물게, 나름의 긍정적 결말로 볼 여지도 있다. 영화 형식은 소박하다. 카린의 살인장면의 돌발적인 ‘클로즈업’ 기법은 무성영화 시절의 고전적 스타일을 상기시킨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이후 <처녀의 샘> 등 초기작에 대해 “엉터리이며 치졸한” 영화라고 고백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연출자의 지극히 겸손한 자기비판의 목소리로 들린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