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불이 꺼지고, 영화의 막이 오르면, 이런저런 오프닝 크레딧이 뜨고 사라진다. 그 끄트머리에 긴 여운을 남기며 박히는 크레딧이 있으니, 바로 ‘A FIlm By…’(아무개 감독의 영화) 라는 ‘인장’이다. 그런데 최근 할리우드에는 이런 유형의 크레딧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영화가 공동 창작 예술이라는 인식이 업계 내에, 그리고 감독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는 뜻일까?
<버라이어티>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90년대까지만 해도 감독 소유 또는 주체를 뜻하는 ‘A FIlm By’의 크레딧을 쓴 감독이 70%에 달했지만, 최근에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영화 중에서도 이런 크레딧을 쓰는 예가 50%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본래 이런 식의 크레딧을 쓰지 않는 감독들도 꽤 많은데, 그중에는 스티븐 소더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샘 멘데스, 조엘 코언, 고어 버번스키, 스티븐 달드리, 롭 마셜, 프랭크 다라본트, 커티스 핸슨, 크리스 놀란, 우디 앨런 등의 스타 작가감독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물론 여전히 이런 유형의 크레딧을 고집하는 감독들도 존재한다. 최근작 중에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스필버그, <피아니스트>의 폴란스키, <갱스 오브 뉴욕>의 스코시즈 등이 크레딧을 통해 ‘내 영화’라는 표식을 했었다. 특히 존 카펜터는 영화 제목에 자신의 이름을 끼워넣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최근작은 공식 타이틀이 <존 카펜터의 화성의 유령들>이었다. 그는 최근 감독들이 소유 및 주체의 크레딧을 쓰지 않는 것이 스탭들과의 불화를 피하기 위한 것이지, 어떤 인식의 대전환이 왔기 때문은 아니라고 증언한다.
기원을 따지자면, 그리피스 시절로 거슬러올라가야 할 이 크레딧은 50년대와 60년대로 이어져 내려오며, 앨프리드 히치콕 등 스타 감독들을 부각시키는 마케팅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크레딧이 상용화되면서, 가장 크게 불만을 드러낸 것은 작가 진영이었다. 그들 불만의 핵심은 그 크레딧이 ‘거짓말’이라는 데 있다. 작가들은 ’필름 바이’의 크레딧을 달 수 있는 자격은 시나리오 집필에 참여한 감독에게 한정해야 하는데,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데 분노한다. 창작의 단독 주역인 것처럼 스스로를 부각시키는 감독에 대한 배신감, 그 바람에 작가의 위상이 폄하돼왔다는 피해의식이 적잖은 것이다.
크레딧을 둘러싼 미국감독조합과 작가조합의 갈등은 그 뿌리도 깊거니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66년엔 작가조합과 스튜디오 사이에 작가의 크레딧을 부각시키는 계약이 체결됐다가, 감독조합 주도로 소송과 파업이 시도된 바 있다. 99년엔 작가조합에서 “작가가 영화 창작의 주요한 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파업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감독조합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작가들이 세트장에 오거나, 촬영분을 보거나, 프레스 정킷에 참석할 수 없게 하는 강수를 쓴 것. 2001년엔 다시 작가조합에서 크레딧 정정 등을 요구하며 파업 경고를 하기도 했다.
크레딧을 둘러싼 분쟁은 과열된 감이 있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감독 소유 및 주체 크레딧을 쓰지 않는 대표적인 인물인데도, 동료 작가와 감독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고 증언한다. “내 영화를 한편 이상 본 관계자들조차 그 크레딧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일반 관객 역시 그러할 것 아닌가.” 또한 지금 상황에서 문제의 그 크레딧을 쓰지 않는 감독이 늘어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무리다. 업계의 관계자들은 이를 ‘모피 안 입기 캠페인’과 크게 다를 게 없다며 냉소한다. 영화의 주인은 누구인가. 영화 창작의 주역은 누구인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낼 것인가.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