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가장 신랄한 반미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은 지금까지(최소한 한국의 극장에서 개봉한) 미국영화 가운데 가장 신랄한 반전, 반부시, 반미영화이다.부시 정권이 꼴보기 싫어 죽을 것 같은 이들에겐 박수가 절로 나오는 공감대를 선사하고, 미국이 왜 저럴까 궁금증이 남아 있는 이들에겐 설득력 있는 답안을 제시한다. 전쟁에 이긴 미국 앞에 다시 지지와 친선을 서약하는 미국인과 서방 각국을 보며 우울함에 잠긴 이들에겐 위로가 될 유머와 격려를 보태준다.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더니, 올해 보수적인 오스카의 최우수 다큐멘터리상까지 받았다. 40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든, 상영시간도 2시간 남짓한, 그것도 다큐멘터리임에도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개봉한 뒤 7개월간 간판을 내리지 않고 2천만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 영화의 대중적 호소력을 오스카도 외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99년 4월 콜럼바인 고교생 2명이 900여발의 총알을 난사해 학생 열두 명과 교사 1명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왜? 두 학생은 학교 볼링반이었고, 사건 당일 아침에도 볼링을 쳤다.볼링이 잘 안 맞아 스트레스가 쌓여서 총을 쏜 걸까. 물론 그럴 리가 없다.‘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은, 이 사건을 이해하고 재발을 막으려면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무어의 시각을 깔고 있다.무어는 내키는 대로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다.학교 근처엔 세계 최대의 무기 공장 록히드 마틴사가 있다.공장 간부를 인터뷰하지만 동문서답이다.보수적인 언론에선 과격한 로커 마릴린 맨슨이 학생들을 버려 놓았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2천만달러 수익에 오스카상까지
무어는 마릴린 맨슨을 인터뷰한다.“텔레비전은 온통 공포를 조장한다.홍수, 에이즈, 살인….광고도 공포효과를 노린다.그게 우리 경제의 기초다.” 무어는 ‘공포’라는 키워드를 발견한다.그리곤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를 만든 맷 스톤과 트레이 파커와 만나 미국의 학교교육이 얼마나 끔찍한지 열심히 성토한다.곧이어 이 둘이 그린 1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미국의 역사가 펼쳐진다.구교도가 무서워 아메리카로 건너와서,인디언들이 무서워 학살하고,흑인들이 무서워 차별하고,이제는 집안에 총을 들여놓고 집 문을 꽁꽁 잠그고, 제3세계가 무서워 먼저 그들을 침공하고….이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웃긴지 <사우스 파크>를 본 이들은 익히 짐작할 듯하다.
부시 집안과 원수에 가깝다
저술가, 다큐멘타리 감독, 랄프 네이더의 선거운동 참모 등 이력이 다채로운 마이클 무어는 목에 힘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다.50살의 나이답지 않게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투덜대고, 무턱대고 찾아가 시비를 건다.그 여유와 유머로 미국의 역사와 빈익빈부익부의 사회구조, 미국 백인들의 집단 무의식까지 파헤친다.베스트셀러인 그의 저서 <멍청한 백인들>에서 밝혔듯, 그는 부시 집안과 원수에 가깝다.다큐멘터리 <로저와 나>(89년)를 만들 때 함께 일한 케빈 레퍼티가 조지 부시의 사촌인 탓에 이 형제들을 개인적으로 알지만 만날 때마다 “패배감과 함께 초라함”을 느꼈다.
조지 부시는 “어디 가서 취직이나 하라”고 그를 쏘아부쳤고, 동생 닐 부시는 무어가 카메라 없이 나타나자 보란 듯 그의 볼을 꼬집으며 놀려댔다.올해 오스카상 시상식장에서 무어는 “조지 부시,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한방 먹였다.그러나 이라크전이 끝나고 미국 여론은 무섭게 부시 지지로 돌아섰다.무어는 또 다시 패배감을 느낄까. 그는 다음 영화 <화씨 911>를 통해 조지 부시의 아버지인 전직 대통령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 일족 사이의 음모와 모사로 얽힌 관계를 추적해 들어갈 예정이다.24일 서울 메가박스, 코아아트홀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