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성은 노하우나 테크닉을 넘어선다"
배창호 감독이 소리없이 신작 <길>을 찍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남을 청했다. <길>은 70년대에 장터를 떠돌아다니던 대장장이 이야기로 감독 본인이 주연 배우를 겸한다. 막상 배창호 감독과 대면했을 때 서로의 시선이 잠시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흑수선> 때문이었다. <정> <러브 스토리>를 통해 녹슬기는커녕 농익은 연출력을 과시했던 배창호가 버젓한 예산으로 큰 영화를 만든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이런 기대가 어긋났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던 필자가 1년 반 만에 감독과 마주 앉은 것이다. 이야기는 선뜻 본론으로 접어들지 못했다. 마침 한달 전에 발간된 에세이집이 돌파구가 되어주었다.
<창호야 인나 그만 인나>라는 제목이 중의적으로 들린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잠꾸러기였다. 아버지가 경상도 진주 분인데 아침마다 “창호야 인나, 그만 인나” 하면서 흔들어 깨우셨다. 아주 지겨웠다. 몇년 전에 아버지가 타계하셨다. 이제 그 소리가 마치 게을러져가는, 잠들어가는 나를 깨우는 각성의 소리처럼 기억된다. 그래서 나를 깨우던 그 지겹던 소리를 제목으로 삼았다.(이렇게 말하고 난 그는 <길>의 스틸 북을 보라고 권했다.)
촬영지가 어디인가.
전라도 김제, 함평, 강원도 대관령, 임계, 삼척 등이다. 그러고보니 요새는 설경을 찍는 영화가 드물다. 90년대까지는 눈을 많이 찍었는데.
(스틸 속의 인물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배 감독 본인인가? 주인공을 직접 연기한다고 들었는데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 성공이야! 70년대에 장터를 떠돌아다니던 대장장이로 실존 인물이다. 길가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러 서울에서 온 여공과 만나는데 그를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자기 삶과 교차되기도 하고 그렇다. ‘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꼭 찍어보고 싶었다. 펠리니의 <길>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고통의 멍에를 지고 가는 인생 이야기를 하기에 마땅한 표현이기도 하고.
장례식 가는 여주인공 옷깃에 웬 스마일 배지가 달려 있나.
그것 때문에 영화 안에서도 경찰관한테 오해를 받는다. 성격이 약간 백치적인 데가 있는 인물이라서. 강기화는 <정>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배우다.
구상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에그필름에서 <바라문>이라는 작품을 준비 중인데 계절을 놓쳤다. 고려시대 불교 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고 가을장면이 필요하다. 다음 가을까지 기다리긴 그렇고 해서 다시 독립영화를 해보자 이렇게 된 거다. <정>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많다. 대장장이도 그렇고 이발소, 연, 둑길, 눈길, 황톳길 등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것들이 다 골동품이 돼가는 시대 아닌가. 그런 걸 소재로 아우르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인생의 이야기가 뭔가 생각했다. 그러다 <길>이 떠오르더라. 이번에는 깊이있는 로드무비를 하고 싶다.
<고래사냥>과 <안녕하세요 하나님>도 로드무비였는데.
그렇다. 이 세편은 통하는 구석이 있다. <고래사냥>은 대중적으로는 힘이 있었지만 드라마틱한 요소가 강하다. 그게 싫어서 <안녕하세요 하나님>을 다시 만들었다. 세 주인공의 이름이 다 똑같고 캐릭터가 유사한 이유다. 그 영화는 고왔지만 이번에는 곱지 않고 거친 대신 깊은 느낌을 주게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만희 감독의 <삼포 가는 길>을 참 좋아하는데, 그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른다.
그런 것도 다 원형이 되었을 거다. <삼포가는 길>이나 <메밀꽃 필 무렵>의 요소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지 않겠나.
<길>에 관한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배창호가 매끈한 장르영화 대신 독립영화로 다시 회귀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나는 사람이 좀 다양하고 좋아하는 영화도 종횡무진이다. 내 필모그래피도 마찬가지다. 다만 80년대부터 지금까지 내게는 어떤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생을 애정있게 바라보는 시선, 고통이 있더라도 그 고통을 감싸안으려는 세계관이라고 할까. 이번엔 좀더 성장하고 좀더 깊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전보다 성숙했다면 영화에 드러날 테고, 머물러 있다면 머물러 있는 대로 나올 거고.
그래도 어느 시점부턴가 배창호가 달라졌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는데.
굳이 구분한다면 <황진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성찰을 하면서 찍은 최초의 영화였다. 그 전에는 <적도의 꽃>부터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까지 이어지면서 흥행적으로 승승장구했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아,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생각해보니 그게 흥행이니 명예니 하는 결과에 너무 집착해서 그런 것 같았다. 평생 영화 할 건데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황진이>를 제작한 분은 아직도 의아해한다. 왜 그렇게 만들었냐고. 사실 시나리오는 흥미있게 썼는데 막상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내가 바뀌었기 때문에 대중적인 장치, 극적인 설정을 다 빼버렸다.
<황진이>는 비평가들 사이에 롱테이크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보면 롱테이크도 아니다. 사람들은 그 영화의 내적인 것 대신 겉모습을 많이 이야기하더라. 그냥 뭐, 형식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었다. 음… 영화 찍다보면 내가 간섭을 못할 때가 있다. 영화가 스스로 가는 호흡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면 나를 배제시키고 그 호흡을 따라줘야 한다.
그런 변화 이후 스스로 행복한가.
행복이 평안이라면 행복한 셈이다. 근데 이후로도 좀 들어갔다 빠졌다 했다. 사실 대중성과 상업성은 따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상업성이 자극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요소를 뜻한다면, 대중성은 이야기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전쟁 이야기를 해준다든지 내가 연애한 이야기를 해준다든지 귀신을 봤는데 말이야, 이렇게 하면 이야기의 폭이 넓어지는 거고 그게 대중성일 거다. 이야기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사실 <기쁜 우리 젊은 날>이 컷 수가 180개쯤 되고 <황진이>는 200여컷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전자를 지루하지 않게 봤다.
최근에는 대중적인 영화보다 핍진한 저예산영화쪽에서 훨씬 더 만족을 느꼈을 것 같은데.
두 종류 모두 다시 찍고 싶다. 영화 하는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만족도라는 것은 현실을 받아들인 상황에서 내가 능력껏 최선을 다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또 모르지. 딴 사람이 보기엔.
작은 바늘이 꽂힌 듯한 이 답변은 우리의 이야기가 <흑수선>으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했다. 사실 감독들은 자신이 만든 모든 영화에 대해서 극진한 애정과 고통스러운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글쟁이의 리뷰, 특히 가쁜 호흡을 갖고 있는 저널리즘이란 수년간의 산고 끝에 태어난 작품을 흘낏 일별한 뒤 선고에 가까운 판단을 독자-관객에게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후의 대화는 서로의 존재론적 갈등이 되살아나 조심스럽게 부딪치고 해원하는 언덕배기로 접어들었다.
이쯤에서 <흑수선> 이야기를 좀 해보자. <정>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여건에서 만들어졌지만 결과는 상이했는데.
그건 선호도의 차이 아닐까. 보는 사람마다 내 영화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이 제각각 다르다. <흑수선> 경우에는, <정> 같은 독립영화적인 걸 기대했던 사람이나 액션이 포함된 대중적인 장르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모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간을 갔다고 보는데. 게다가 요즘엔 정통적인 드라마 구조를 가진 영화를 잘 안 찍기 때문에 그런 영화 작법이 낯설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흑수선>을 옛날 영화 같다고 이야기하는 거, 나도 무슨 뜻인지 알겠다. 단점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어쨌든 난 정통으로 풀었다고 본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난 그게 그 영화의 톤에 맞는 거라고 봤다.
감독의 의도와 관객 반응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
난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보는데. <정>의 100배 관객이 들었거든. 제작자 손해 안 보고. 물론 내 연출에 대해 반성하는 점은 있지만, 그걸 다 해내려면 돈과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감독은 어느 선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마무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거다. <흑수선>은 사실 필름을 10만자도 안 썼다.
<길>은 제작예산이 얼마인가.
5억원이다.
이런 영화를 제작하려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
강충구 대표인데,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 조감독을 했고 <러브 스토리>의 조감독 겸 제작지휘, <정>의 제작지휘를 맡았다. <길>은 이산프로덕션의 창립 작품이다. 경북대 국악과를 나왔고 나보다 연배가 여섯살 밑인데 원래 내가 결혼하기 전에 집사람과 먼저 안면이 있었다. 지금 돈 구하러 다니느라 바쁠 거다.
차기작을 저예산으로 하게 된 것은 <흑수선>에 대한 반사작용이란 측면이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또 대자본이 필요하구나 싶으면 그쪽으로 가는 거지. <바라문>은 대작이다. 몽골군이 쳐들어왔을 때의 이야기니까 크게 펼치진 않지만 돈이 좀 들어가는 영화다. <길>의 경우에도 스탭들의 참여정신과 제작진의 호흡, 그리고 20년 넘게 작업해온 나 자신의 현장 노하우가 결합된 것이지, 요즘 스타일로 찍는다면 10억원을 상회할 거다.
제작 시스템의 효율성 문제는 정말 심각한 현안인 것 같다.
우리나라 영화현장에서 면면히 내려오던 제작 노하우가 어느 순간 뚝 끊어져버렸다. 예를 들어 <고래사냥>은 9천만원에 찍었고 당시 입장료가 2천원이었다. 피카디리 한개 극장에서 43만명이 들었고, 재개봉관, 재재개봉관까지 가면 서울에서 80만명은 됐을 거다. 전국적으로는 300만명 이상이 나왔을 거고. 지금 그 정도 찍으려면 25억원은 들 텐데 입장료는 7천원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제작비 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물론 옛날엔 허술하게 찍은 게 많았고 그런 부분에 투자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장을 관리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효율성을 갖는 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건 철저한 사전 준비와 연관된다. 발품을 팔아야 하고. 미리 계산해서 머릿속 편집이 되어 있어야 한다. 절대 아낄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 문제는 누수를 줄이는 것이다.쓸데없이 찍고 난 다음에 편집과정에서 자르는 것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 옛날에 살이 많이 쪄봐서 아는데 살찌긴 쉬워도 빼는 건 어렵다. <러브 스토리> 할 때도 카메라, 요즘 슈퍼35mm라고 하잖아. 시네마스코프를 비스타비전으로 찍어서 누르는 거거든. 스퀴즈 앵글로 해서. 원래는 아나모픽 렌즈라 하는 시네마스코프 렌즈로 찍어야 정석이다. 사실 스퀴즈 하면 핀트가 조금씩 안 좋아지는데, 그거보다 낫거든. <러브 스토리>는 그 렌즈를 십몇년 만에 다시 찾아서 미첼 카메라에 달아 찍었다. 지금도 BL4를 쓰는데 남들은 잘 안 찾는다. 굉장히 좋은데. 요즘 학생 영화에서도 카메라 좋은 거 찾고, HMI 조명 찾고 그런다더라. 꼭 그걸 써야 좋은 영화 나오는 거 아니거든.영화는 정신으로 찍는 거지. 대기업이나 금융자본 같은 새로운 자본이 확 들어오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장 스탭들에 대해서는 선입견이 없다. <흑수선>을 할 때 보니 굉장히 열정적이더라. 단지 집중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예전과 달리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고 일하는 게 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옛날엔 ‘레디’할 때 카메라 앞으로 기운이 확 몰리는 게 느껴졌고, 내가 그걸 받아서 ‘액션!’ 하면, 카메라가 스르륵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거든. 근데 요즘엔 뭔가 사각사각하는 느낌이다. 하긴 하는데 영혼을 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관객도 영화를 마음이 아닌 눈으로만 보는 것 같다.
그런 갭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갭 자체는 메울 순 없다고 본다. 다만 이야기 선택에서 좀더 시각적인 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고려할 수는 있겠지. 다만 거기에다 전적으로 맞추는 건 힘들 것 같다.
외로움을 선언하는 것인가.
이야기를 잘 선택하고 스타도 기용하면 관객이 오지 않겠나. 내게도 공감의 코드가 있을 거다. <길>은 목표치를 딱 10만명으로 잡고 있다. 거기에 맞는 배급방식을 찾아야지. 틈새가 분명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점차 프로페셔널한 독립영화가 한축을 이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저예산영화, 실험영화 정도로 규정되지만 정말 프로 같은 거, 100원 가지고 300원 효과 내고, 자기 목소리 분명하고, 관객 10만명짜리, 20만명짜리, 30만명짜리 그러다가 몇백만명 하는 영화도 나오고….
그것이 진정한 르네상스일 거다. <길>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면 좋을까.
아이, 정말 기대를 안 하는 게 좋은데…. 지난해에 쉬면서 몇십년 만에 데생을 해봤다. 세부를 자꾸 손질하다보면 그림이 생생해지더라. 영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무엇보다 내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이 살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진실성은 노하우나 테크닉을 넘어선다.
근처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함께 먹는 것으로 이날의 만남은 막을 내렸다. 몸무게를 96kg에서 78kg으로 줄였을 때 혁대 갈아끼우는 재미가 마치 갱생의 삶을 사는 것 같더라는 둥, 로또복권 살 돈 있으면 삼겹살 사먹겠다는 둥, 식사시간 특유의 가벼운 담소가 이어졌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은 역시 영화 이야기였다. 중견감독 배창호는 아직도 자신의 취향을 삶으로 만드는 영화 만들기를 계속하는 중이었다. 사진기자는 이날의 인상을 배창호 감독의 머리 위에 아름다운 전구가 켜진 이미지로 잡아냈다. 거칠고 고통스런 탐색을 통해 머리 위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불빛을 피워내는 것, 그건 지금의 배창호 감독에 대한 적절한 요약인 것처럼 보인다.글 김소희 cwgod@hani.co.kr,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