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마리사(제니퍼 로페즈)는 10살짜리 아들을 혼자 키우며 사는, 맨해튼 특급호텔의 청소부다. 호텔 관리직에 결원이 생겨, 승진을 꿈꾸던 그녀에게 기회가 온다. 와중에 호텔에 투숙한 상원의원 크리스 마셜(랠프 파인즈)이 마리사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다른 투숙객이 맡겨놓은 고급 의상을 입어보고 있던 그녀를 보고 호텔 손님으로 오해한 것. 마리사는 신분과 본명을 숨긴 채 잠시 마셜과 공원을 산책하고 도망치듯 헤어진다. 그러나 마셜이 절실히 마리사를 찾는다.
■ Review
호텔 청소부, 브롱크스 거주, 라틴계 유색인종, 그리고 미인. 마리사는 신데렐라가 될 조건을 다 갖췄다. 의외인 건 그녀에게 10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것. 하지만 키신저 전기를 읽고, 닉슨에 대해 조예가 깊은 이 조숙한 아들은 자신의 역할이 뭔지를 잘 알고 있다. 미혼의 미남 상원의원 마셜을 만나자마자 한눈에 알아보고, 그의 정책노선까지 읊어댄다. 그리곤 눈이 똥그래진 마셜을 엄마에게 데려간다. 산책을 가자는 마셜의 제안에 머뭇거리는 엄마의 등을 떠미는 것도 물론이다.
맨해튼 특급호텔 청소부의 신데렐라 되기. <러브 인 맨하탄>은 신분의 차이를 장애물로 놓고, 악의없는 거짓말과 그로 인한 오해와 소동을 사다리 삼아 넘어간다.
<러브 인 맨하탄>은 또 다른 신데렐라 이야기다. 플롯은 공식에 충실하고, 그래서 예측가능하다. <귀여운 여인>이 콜걸과 백만장자의 만남이라면, 이번엔 호텔 여종업원과 상원의원이 만난다. 스크루볼코미디의 전통을 따라 그 신분의 차이를 장애물로 놓고, 악의없는 거짓말과 그로 인한 오해와 소동을 사다리 삼아 넘어간다. <귀여운 여인>에서 관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게, ‘신데-퍼킹-렐라 스토리’라는 영화 속 한 인물의 말처럼 콜걸이라는 여자의 직업이었다면, 이 영화에선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마셜로 하여금 상류사회 여성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마리사의 소극적 거짓말이다. 그 거짓말이 이후 해프닝의 발단이 됨과 아울러, 둘의 신분 격차가 간단한 게 아님을 역설적으로 전하는 장치가 된다. 그것도 그다지 새로운 건 아니다.
직설적인 제목이 예고하듯, <러브 인 맨하탄>은 알면서 보는 영화다. 주인공과 함께 들뜨고 안타까워하고, 스타배우들을 품평하고, 의상과 장신구에 눈을 기울이면서. 제니퍼 로페즈는 “출연작의 질이 떨어지는 것에 반비례해 그녀의 대중적 인상이 상승한다”는 <옵서버>의 말까지는 몰라도, 수수하면서도 강단있는 마리사의 캐릭터를 잘 살려낸다. 영화 내내 그녀는 복장도 수수하지만, 한 차례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로 그 육감적 몸매를 드러낸다. 또 5천달러짜리 돌체&가바나 코트에 해리윈스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어주면서 명품을 눈요기할 기회를 서비스로 제공한다.
아쉬운 건 영화의 구성이 너무 익숙해서 관객이 들뜨고 안타까워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라는 점이다. <스모크>의 웨인왕 감독이 이처럼 관습적인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뜻밖이지만, 몇몇 장면에서 <스모크>처럼 뉴욕의 중하층 소수인종들을 애정있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호텔 동료 종업원들이, 마리사와 마셜을 맺어주기 위해 일제히 나설 때 영화는 모처럼 활기를 띤다. 낭만 가득한 센트럴 파크뿐 아니라 브롱크스의 초라하고 쓰레기 흩어진 놀이터를 비추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엔딩은 온정주의적이지만. 임범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