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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화냐 그녀의 영화냐
2001-05-02

두 스타에 관한 두개의 영화 <멕시칸>

● 따뜻함 속에서조차 긴장감과 단호함이 느껴지는 줄리아 로버츠는 자족의 이미지를 풍기는

여배우다. 최근 들어 그녀가 맡은 로맨틱한 배역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자신을 우러러 마지않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휴 그랜트의 상대역으로

등장했던 <노팅힐>에서의 ‘스타’였다. 다른 건 몰라도, <멕시칸>은 맞지 않는 배우들이 상대역으로 출연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끔 가다 매력적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능장애 상태인 커플에 관한, 가끔 가다 매력적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능장애인

이 액션코미디는 사실상 두개의 전혀 다른 영화이거나, 아니면 평행선상을 달리는 두개의 스타 영화이다.

첫 장면에서, 한 침대에서 눈을 뜬 샘(줄리아 로버츠)과 제리(브래드 피트)는, 발코니 위아래에서 사랑의 밀어 대신 귀따가운 고성방가와 놀라자빠질

연극적 몸짓들을 주고받은 뒤 잽싸게 갈라선다. 그리고 그뒤 90분 남짓, 이 영화는 전적으로 ‘그의 영화’이거나 아니면 ‘그녀의 영화’다.

피트의 영화는, 제리가 무능하기 짝이 없는 갱단의 보스들을 대신해서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맥거핀, 즉 죄의 역사로 얼룩진 수제 골동품 권총

‘멕시칸’을 찾아 멕시코로 떠난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난장판 선술집에서부터 선인장 본고장에서의 총격전에 이르기까지,

브래드 피트의 여전히 소년 같은 매력과 몸으로 때우는 코미디의 재능 덕분에, 그의 영화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얼간이치고는 귀여운 제리는 어쩐

셈인지 별의 별 잡탕 같은 적들 그리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원주민들과 맞서 용케도 이겨낸다. 실제로, 그가 외국방문에 나선 ‘두비야’(조지

부시 대통령의 별명)같이 보일 때조차, 제리가 쏜 총은 적의 발에 가서 꽂히더라는 식이다.

한편, 훨씬 더 도발적인 로버츠의 영화를 들여다보자. 성질이 불같은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처럼 보이기가 직업인 게 분명한) 샘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갔다가, 제리와의 관계 덕분에, 처음엔 카지노 화장실에서 벌어진 일종의 청부업자간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그뒤 뾰족구두를 신고

뒤뚱뒤뚱 돌아다니다가는 르로이(<소프라노스>의 마피아 보스 제임스 갠돌피니)라는 사내에게 납치된다. 피트의 영화가 약간 지루한 슬랩스틱

총격전이긴 해도 단도직입적인 반면, 로버츠의 영화는 정서적 롤러코스터쪽이라고 보면 맞다. 위험에 빠진 여자의 공격적인 스토리로 시작했던 로버츠

영화는 납치된 샘이 “제리는 받는 사람, 나는 주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관계분석에 시간을 쏟기 시작하면서 갈수록 감상적으로 변한다.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날카로운 목소리와 불굴의 의지의 소유자로 연기변신함으로써 오스카 수상은 따논 당상으로 보이는 로버츠는(이

글은 아직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쓰여졌다), 수상을 앞둔 후보의 사전준비답게, 자신의 사회사업가적 면모를 한층 더 다진다. 샘은 낮방송

토크쇼 프로들로부터 배운 지혜를 교묘하게 응용해, 곁눈질과 은밀한 고백의 선수인 르로이가 아무도 모르는 성적인 드라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추론에 도달한다.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난 뒤에 짓는 로버츠의 미소는 눈이 멀고도 남을 만큼 눈부시다.

완벽한 데이트용 영화인가, 아니면 해골 빠개지게 골아픈 영화인가? 버드와이저 광고로 TV CF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얻고 만화 같은 <마우스

헌트>로 감독 데뷔전을 치렀던 고어 버빈스키는 코믹 스타일에 일가견이 있다. 원기왕성하게 출발한 <멕시칸>은 신랄하면서도 귀여운

영화를 지향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면전환에 따른 분위기 변화에 애를 먹는다. 갱들이 퇴직금 규정과 정리해고를 통한 구조조정 문제를 놓고 투덜거리는

나선구조의 시나리오는, 엘모어 레너드의 질낮은 아류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맥거핀인 권총 ‘멕시칸’에 대해

괴이쩍은 스필버그식 경이감을 표한다. 생명은 싸구려로 죽어나가지만, 그 어떤 것에도 결과는 없다.

“말뜻을 몰라도 저들의 고통을 듣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요.” 멕시코 연속극을 넋놓고 보던 샘은 그렇게 설명한다. <멕시칸>은

폭력이 상승일로를 치닫는 와중에조차 해설한답시고 말이 갈수록 많아지고, 농담도 얼마나 해대는지, 결국에 가서는 30분쯤 잘랐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샘 페킨파는 <와일드 번치>를 가리켜 “킬러들이 멕시코에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런데 <멕시칸>은 ‘재미 킬러’(분위기 깨는 사람)들이 멕시코에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에 가깝다(샘이 힘없는

지 애인을 맞으면서 퍼붓는 성난 클리셰 벼락보다 더 폭력적인 게 또 있을까). 현대적 기준의 시체 정족수를 채운 구식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운 영화 <멕시칸>은 망각의 석양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지금 이순간조차도 여전히 혼잣말로 수다를 떨고 있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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